김대성 - 불국사, 석굴암 > 전해주는 이야기

본문 바로가기
사이드메뉴 열기
공부이야기


5d3edd3d579f28d5b4b84e93f29d0215_1596530159_355.jpg


5d3edd3d579f28d5b4b84e93f29d0215_1596529628_9221.jpg

 

김대성 - 불국사, 석굴암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188회

본문

 

2049587376_IpYaULcV_illl.jpg
불국사와 석굴암을 지은 이로 김대성(金大城, ? ~774)의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듯 널리 알려진 데 비해 구체적인 그의 삶은 오리무중이다. 온통 설화로 범벅된 생애의 기록 때문이다. 김대성은 누구였던가. 과연 그의 삶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던져 주는가.
김대성과 불국사에 얽힌 의문
2049587376_7BG1fHxo_17.jpg
김대성은 불국사와 석굴암을 지은 이다.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경덕왕 때였다. 대상 대성이 천보(天寶) 10년 신묘년(751)에 비로소 불국사를 지었다. 혜공왕 때를 거쳐 대력(大歷) 9년 갑인년(774) 12월 2일에 대성이 죽자, 나라와 집안에서 일을 마쳤다”고 적었다. 이는 절에서 전해오는 기록이라 하였다.

불국사와 석굴암의 우수성은 달리 말할 필요도 없다. 일연마저 “불국사의 구름다리와 석탑 그리고 강당을 조각한 석목에 들인 공이 경주의 여러 절 가운데 이보다 더할 것이 없다”라고 찬탄하였다. 경주에 절이 한둘 아니요, 불교적 힘을 말하자면 이보다 더한 절이 있겠건만, ‘들인 공’을 따져서 두 절을 따라갈 곳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자금 누구라도 이 말을 부정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성 자신은 수수께끼 속의 인물이다. 대상이라 한 것을 보면 상대등이나 각간 같은 최고의 관직에 오른 이로 보이지만, [삼국사기] 쪽에서는 그의 이름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불국사와 석굴암 같은 국가적 사업에 준할 거대한 사찰을 지은 이라면 공이 남다를 텐데 말이다.
두 절만 해도 그렇다. 김대성이 지었다는 기록은 [삼국유사]에서 명백하지만, [삼국유사] 안에서도 신문왕 때와 경덕왕 때로 그 시기가 갈리고, 불국사의 창건에 관한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불국사 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에는 법흥왕 15년(528)에 왕의 어머니인 영제부인(迎帝夫人)의 발원으로 지었다 했다. 그런가 하면 [불국사 사적(事蹟)]에는 이보다 앞선 눌지왕(訥祗王) 때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하였다는 기록마저 보인다.
김대성은 그 이력이 분명하지 않고, 불국사의 창건 기록은 여러 가지이다. 김대성에 대해서는 다분히 설화적인 전기가 [삼국유사]에 자세하지만, 이로써 그의 전모를 알기보다는 어쩐지 더욱 신비스러운 인물로 달려가 버리고 말았다. 분명 문제적인 인물에 틀림없는 김대성의 설화적 삶을 우리는 어떻게 볼 것인가. 불국사의 창건에는 어떤 정치적인 함의가 도사리고 있는가. 이제부터 우리가 찾아가 해결할 의문점이다.
 
 
 
금빛 간자를 쥐고 태어난 아이
2049587376_7BG1fHxo_17.jpg
너무 큰 것은 너무 커서 평범한 이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쩌면 이 말은 김대성과 불국사 그리고 석굴암을 두고 하는 말인지 모른다. 우선은 [삼국유사]의 기록을 따라 김대성이 누구인지 살펴보자.
일연은 신문왕(재위 681~692)이 다스리던 때라고 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모량리에 사는 경조(慶祖)에게는 머리가 크고 이마가 넓기를 마치 성 같아 이름을 대성(大城)이라 하는 아들이 있었다. 그러나 집안이 가난하여 키울 수 없게 되자, 재산이 많은 복안(福安)의 집에 고용살이로 들여보냈다. 그 집에서 밭 몇 도랑을 나누어 줘 먹고 입는 데 썼다. 밭 몇 도랑에 아들을 넘긴 셈이었다.
어느 날 대성은 복안의 집에서 절에 시주하는 것을 보았다. 시주를 받은 승려는 “하나를 시주하면 받는 것은 만 배/편안히 즐거우며 오래 살리이다”라고 축원해 주었다. ‘하나를 시주하면 받는 것은 만 배’라는 말에 대성은 아찔했다. 그는 집으로 달려와 어머니에게 말했다. “우리는 분명 쌓아 놓은 선행이 없어 지금 이렇게 고생하는 것 같아요. 이제 또 시주하지 않으면, 다음 세상에서 더욱 힘들어지겠지요? 작지만 저희가 가진 밭을 절에 시주해서, 다음 세상에 갚아주시길 바라는 게 어떨까요?” 머리가 큰 만큼 계산도 빨랐던 모양이다. 다행히 어머니는 흔쾌히 동의하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만 배의 복을 받기는커녕 얼마 있지 않아 대성이 죽었다. 날벼락이었다. 그러나 극적인 반전은 바로 다음에 따라왔다. 이것이 이야기의 묘미이다. 이날 밤 나라의 재상인 김문량(金文亮)의 집에 “모량리의 대성이라는 아이가 이제 네 집에 의탁하러 온다”는 소리가 하늘에서 울렸다. 집안사람들이 크게 놀라, 사람을 시켜 모량리의 대성을 찾아보게 하니, 과연 그날 죽었다. 김문량의 부인은 이 일로 아이를 가졌다.
그러나 이 아이가 대성인 줄을 어찌 알겠는가. 그래서 다음 장치가 따라나온다. 태어난 아이는 왼쪽 손을 꽉 쥐고 펴지 않았다. 7일 만에야 손을 열었다. 아이는 금빛 간자를 쥐고 있었던 것인데, 거기에는 ‘대성’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 있었다. 모량리의 김대성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대성은 본디 어머니 경조를 모셔다 함께 봉양했다.
 
불국사와 석불사를 짓다
2049587376_7BG1fHxo_17.jpg
두 번 태어난 대성은 이로써 ‘하나를 시주하면 받는 것은 만 배’의 징험을 보았는가. 아직 아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더욱 극적으로 달린다.
대성은 사냥을 좋아했다. 하루는 토함산에 올라 곰 한 마리를 잡았다. 사냥을 마치고 산 아래 마을에서 자는데, 꿈에 곰이 귀신으로 변해 나타났다. 깨어나서 보니 땀이 흘러 이불이 온통 젖어 있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무척이나 사나운 꿈이었던 모양이다. 곰 귀신은 대성에게 까닭을 따졌다. 그러나 까닭이 따로 있겠는가. 사냥을 했으면 그뿐이지. 대성은 그저 용서를 빌 따름이었다. 그러자 귀신은 ‘나를 위해 절을 지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흠칫, 대성은 이제 살 길이 보이는구나 싶었다. 당연히 맹서하였다.
잠에서 깬 대성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을 것이다. 절에 시주한 덕분에 잘살게 된 자신이건만 살생을 일삼은 일이 후회스러웠을 것이다. 사냥부터 그만두었다. 그리고 곰을 잡았던 땅에다 장수사(長壽寺)를 지었다. 대성은 지금까지 누리던 부유와 다른 충만한 행복을 느꼈다. 자비를 베풀리라는 소원 또한 돈독해졌다. 이는 분명 대성의 세 번째 탄생이라 보아 틀림없다.
대성은 본격적인 불사(佛事)를 시작하였다. 지금의 부모 두 분을 위해 불국사를 짓고,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石佛寺)를 지은 것이다. 석불사는 지금의 석굴암이다. 여기에는 신림(神琳)과 표훈(表訓)이라는 당대 최고의 승려를 모셨다. 불상을 세우는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하였다.
석불사를 만들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큰 돌 하나를 다듬어 탑의 지붕으로 올리려 하는데, 갑자기 셋으로 쪼개져 버렸다. 대성은 분하고 화가 났다. 그러다 설핏 잠에 들었다. 그러는 사이 밤 중에 천신(天神)이 내려와 다 끝내고 돌아갔다. 아침에 일어나서야 대성은 그것을 발견하였다. 감탄하는 마음으로 그는 당장 남령(南嶺)으로 달려나가서, 향나무를 태워 천신에게 공양을 드렸다. 이로부터 남령은 향령(香嶺)이라 불렀다.
여기서 천신의 존재가 누구인지 자세하지 않다. 불사를 하는 도중이니 불교와 관계된 신이라 보면 간단하겠으나, 남령으로 달려가 천신에게 감사를 표했다는 것은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남령은 지금의 남산인지 토함산의 남쪽 고개인지도 자세하지 않다.
 
실존인물로 김대성을 찾아보려는 노력
2049587376_7BG1fHxo_17.jpg
일연이 [삼국유사]에 거둬들인 이 이야기만으로 우리는 김대성의 존재를 전달받는다. 그러나 이야기는 다분히 설화적이다. 좀 더 사실적으로 접근해, 역사학자 이기백(李基白)은 [삼국사기] 경덕왕 4년 5월조의 “중시 유정(惟正)이 물러나고 이찬 대정(大正)이 중시가 되었다”는 기록에 근거하여 대정을 대성이라 하였다. 그러나 대정이 누구인지 자세하지 않고, 글자가 비슷하다 하여 대정을 대성으로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런가 하면 모량(牟梁), 밀양(密陽), 대성(大城)이라는 마을 이름을 가지고, 이들은 상당 부분 서로 겹치고 있으니, 김대성의 대성은 실제 이름이라기보다는 대성 출신의 김 씨라는 뜻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김대성의 집안이 가난했고, 이 무렵 모량리 사람들이 사회적 불이익을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연관시켜, 본디 모량리 출신인 대성이 김문량의 집에서 다시 태어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요컨대 대성의 재탄생은 입양의 설화적 표현으로 보았다.
어느 쪽이 되더라도 [삼국유사]의 대성 이상의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는 없다. 김대정이 어떤 사람이며, 그가 과연 불국사와 석굴암을 지었는지 알 수 없다. 대성이란 마을에 살던 김 씨라고 하면 더욱 그렇다. 그가 김문량의 집에 양자로 가서, 낳아준 어머니와 양부모를 잘 모셨다는 이야기 전개에 무리는 없으나, 그것으로 대성의 정체가 속 시원히 밝혀지지는 않는다. 입양의 증거 또한 없다.
대성의 재탄생 같은 설화적인 구조를 가진 이야기는 다른 예에서도 나온다. 신라 통일기에 활약한 죽지랑(竹旨郞)이 그렇다. 술종공이 삭주도독사로 나가는데, 죽령을 넘어가다 헌칠한 거사 한 사람을 만난다. 두 사람은 호감을 가진 채 헤어지는데, 삭주에 부임한 다음 어느 날 밤 거사가 방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그의 부인 또한 같은 꿈을 꾸었다. 이로 인해 아이를 가졌거니와, 사람을 시켜 거사의 안부를 물은 결과, 꿈을 꾼 같은 시간에 죽었다는 것이다. 술종공은 거사가 자신의 집에 태어날 징조라 여겼다. 이 아이가 바로 죽지랑이다. 죽령에서 만난 거사가 다시 태어났다 하여 지은 이름이었다.
대성이 김문량의 집에서, 거사가 술종공의 집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구조는 같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필요에 따라 만들어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다만 김대성의 경우, 금빛 간자에 이름이 쓰여 있어서 확실한 증거로 삼은 점은 다르다. 대성을 입양하면서도 친자임을 강조하려 생겨난 보강책일까?
 
 
일연이 바라 본 김대성
2049587376_7BG1fHxo_17.jpg
일체의 정치적인 해석을 뺀다면 김대성의 이야기는 효심과 불심을 보이려는 데 지나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삼국유사]의 효선(孝善) 편에 실려 있다. 효행이 뛰어난 이를 모아놓은 자리이다. 먼저 진정(眞定) 스님이 나오고, 이어서 바로 김대성이다. 뒤를 잇는 향득(向得), 손순(孫順), 지은(知恩)에 비해 훨씬 비중 높은 둘을 앞에 배치했다. 진정은 홀어머니의 눈물겨운 주먹밥을 먹으며 의상 스님의 문하에 들어 그 10대 제자가 된 사람이다. 실화에 바탕을 둔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김대성은 그 점에서 달랐지만 지극한 효성의 아들임에는 같다.
김대성은 가난한 집의 홀어머니를 둔 아들이었다는 점에서 일연과 공통점이 있다. 어쩌면 이것으로 일연 자신의 처지를 떠올릴 수 있다. 가난한 집의 아들로 태어나 홀어머니를 두고 평생 승려의 길에 세상을 떠돈 이가 일연이었다. 그러기에 일연에게 효행은 신앙과 거의 버금가는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 일연으로서는 김대성의 역사적 실존에 별 관심이 없었다. 이는 김대성의 이야기 끝에 부친 일연의 시를 통해 입증된다.
모량리 봄 지난 뒤에 세 이랑 밭을 시주했거니
향령에 가을이 와 만 배나 거뒀네
전생 어머니 평생 가난하다가 부자가 되고
재상은 한 꿈 사이에 두 세상을 오갔네
일연은 “한 몸으로 전생과 현생의 부모를 모시니, 이는 예부터 듣기 힘든 일이다. 시주를 잘한 증험(證驗)을 믿지 않을 수 없구나”라고 총평한 다음, 이 시를 붙였다. 모량리의 봄과 향령의 가을을 병치시키면서, 김대성의 일생을 효행의 그것으로 요약한 시이다. 일편 시주를 강조하는 다분히 불교적인 포교시처럼 보이나, ‘한 꿈 사이에 두 세상을 오갔다’는 대목이 절창이라면 절창이다. 일연은 김대성의 이야기가 요즘 말로 치면 설화라는 사실을 알았다. 다만 한 생애가 꿈처럼 달라지는 세상의 절묘한 이치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가만 생각하면 이 이야기는 김대성이 다시 태어나는 세 번의 과정이다. 처음에 대성은 가난한 부모 아래에서 좋은 머리를 가지고 태어났다. 이어서 두 번째는 좋은 머리를 잘 써 부잣집에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진정한 그의 탄생은 세 번째이다. 꿈에서 곰 귀신을 만난 다음, 인생의 바른 가치를 깨닫는 이 마지막 탄생이야말로 대성의 진정한 탄생이었다. 일연은 그때부터가 참된 삶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