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도덕 - 마키아벨리 > 전해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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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도덕 - 마키아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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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35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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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는 중부 이탈리아의 도시 피렌체에서 시작되었다. 피렌체는 서양미술사의 두 명의 천재, 미켈란젤로와 다빈치가 조각과 회화에서 미술의 본령에 대한 논쟁을 벌이며 그 자취를 남긴 도시이다. 이들을 지원했고 동시에 피렌체의 지배 가문이었던 메디치가가 집정하던 건물 우피치(영어:Office)는 가문이 소장한 미술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이 되었다. 우피치는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 미술사가인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가 설계한 것이다. 이처럼 한국의 기준으로 볼 때 조그마한 도시인 피렌체에는 발길 가는 곳마다 르네상스 시대의 뛰어난 회화와 조각 그리고 건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피렌체가 메디치가의 후원으로 시작된 르네상스 미술의 중심 도시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사상에서 근대를 열었다고 평가되는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 역시 메디치가와 굴곡 많은 관계를 맺으면서 서구 사상사에 전무후무한 하드보일드 정치공학 필독서 [군주론]을 남겼다.
사람들을 잘 대우하던지 아니면 아예 철저하게 망가뜨려야 한다. 왜냐하면 조그마한 상처를 입으면 복수를 할 수 있지만, 극심한 상처를 받으면 복수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려면 복수를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혹독해야 한다.
- [군주론] 3장
위의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군주론]은 명확하고 간결한 언어로 쓰여 그 뜻을 이해하는 데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1513년에 쓰여지고 마키아벨리의 사후에 출판된 이 책에 대해서는 극과 극으로 다른 해석들이 존재한다. 아마도 서양 사상사에 이름을 남긴 철학자치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은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이샤 벌린(Isaiah Berlin)의 뛰어난 에세이 [마키아벨리에 대한 질문]에 소개된 기존의 해석들 중 몇몇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스피노자는 마키아벨리의 저서를 폭군정치에 대한 경고로서 일종의 풍자로 해석했다. 피히테는 실제 역사를 움직이는 힘을 성찰하면서 기독교적 윤리를 공격하기 위한 반(反)그리스도교적인 문헌으로 해석했으며, 그와 다르게 마키아벨리를 기독교도로 간주한 학자도 있다. 크로체는 정치 영역에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악’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직시한 ‘분노한 휴머니스트’로 간주했으며, 반면 스위스의 몇몇 해석자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휴머니스트’로 간주했다. 카시러는 마키아벨리를 윤리적으로 중립적인 차가운 정치 공학자로, 헤겔은 몇몇 지엽적 원칙을 넘어서서 혼돈에 빠지기 쉬운 사회의 요소들을 합하여 하나의 전체를 만들려던 천재로 보았다. 베이컨에게 마키아벨리는 이상 사회에 대한 환상을 버린 ‘울트라 현실주의’였고, 공산주의 이상사회를 꿈꾸던 마르크스, 엥겔스에게는 ‘쁘띠 부르조아지’의 껍데기를 벗어버린 ‘계몽주의의 거목’이었다.
일반인들에게 마키아벨리즘이란 “목적을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도 정당화된다”는 말로 요약되지만, 서양의 철학자들이 짧고 명확하게 쓰인 [군주론]에 대해 이처럼 다양하고 상이한 해석들을 내놓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 이유는 비교적 명확하게 추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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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을 통해 근대 정치사상의 초석을 놓은 마키아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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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회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행위 규범은 기독교 윤리라고 할 수 있다. 설사 기독교 윤리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 하나만을 따르더라도 마키아벨리의 주장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마키아벨리를 읽는 독자들의 내면에서 서로 다른 행위규범들이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의 경우엔 규범을 받아들이기 이전 규범의 정당성을 질문하고, 이때 서로 충돌하는 규범들을 통일적으로, 혹은 여러 단계를 설정하여 혹은 여러 영역으로 구분하여 해석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다음의 구절을 살펴보자.
사랑의 대상과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 중에서 어떤 쪽이 더 바람직할까? 어쩌면 우리는 양자 모두가 바람직하다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과 공포는 동시에 존재하기 어려우므로 만일 이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사랑받는 것보다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 훨씬 안전
하다.
- [군주론] 3장
‘마키아벨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정치의 영역과 도덕의 영역을 구별하는 것이다. 마치 뛰어난 예술작품을 창조하는 것이 목적인 예술가들이 상식적 도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경향이 있듯이, 번영하는 강한 국가를 창조하는 것이 목적인 정치가들 역시 상식적 도덕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다. 즉, 정치와 도덕은 서로 독립적인 두 개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의 정치공학적 주장이나 기독교의 가르침 모두 ‘~해야 한다’로 표현된다는 점에서 행위 규범들이다. 여기서 혹자는 윤리적 규범은 내면의 명령이고, 마키아벨리의 주장은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일종의 ‘작전술’로 간주하여 양자를 구별할 수 있다고 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논쟁은 윤리적 원칙이 ‘조건적인 목적 지향성’에 있는지(공리주의) 아니면 칸트식의 ‘무조건적 도덕성’(근본주의)에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근본주의로 해결되었음을 전제하고 있다. 특히 정치의 목적이 번영하는 국가와 국민의 복리증진에 있다면, 이러한 목적을 수행해야 하는 책임감과 결부된 통치행위 규범을 윤리와 무관하다고 보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이샤 벌린이 정확히 지적하였듯이, 마키아벨리의 주장과 기독교 윤리의 충돌은 윤리들간의 충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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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는 강력한 국가를 위해 군주가 지켜야할 덕목들을 설명했다. 그림은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베노초 고촐리의 [동방박사의 행렬](부분)

여기서 마키아벨리적 ‘사회의 윤리’와 기독교의 혹은 상식적인 ‘개인의 윤리’가 서로 상이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떤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때 우리는 마키아벨리를 여러 개의 도시국가로 분열되어 상쟁(相爭)하던 조국 이탈리아의 후진성을 극복하기 위한 냉정한 현실주의자, 혹은 ‘국가이성(raison d'État, Staatsraison)’을 개인의 윤리보다 우선시한 근대적 정치 사상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헤겔은 이 점을 역사일반의 차원으로 높여 생각했다. “역사의 진행은 덕(德), 악(惡) 그리고 정의(正義) 밖에 서 있다.” 물론 여기서 ‘덕’, ‘악’, ‘정의’란 사회의 차원이 아니라 개인의 차원의 이야기다. 그러나 사회의 윤리와 개인의 윤리 사이에 놓여 있다고 보이는 깊은 심연(深淵)은 사회의 구성원이 개인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개인 역시 근본적으로 사회 내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점에서 생각만큼 쉽게 이해할 수 있지는 않다.
즉, 윤리란 본질적으로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정의하는 만큼 크던 작던 항상 사회의 존재를 전제한다. 차라리 우리는 이미 세워진 사회 속의 개인(일반 시민)의 행동방식과 사회를 처음으로 세우고 유지하려는 개인(군주)의 행동방식의 차이를 성찰하는 것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공화국을 만들고 법을 세우려는 사람들은 반드시, 모든 사람은 악하며, 기회만 있으면 항상 악한 마음을 사용하려 한다는 것을 가정해야 한다.
인간은 필요하지 않으면 결코 선행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혼돈과 혼란이 만연하게 된다.
– [로마사 논고] 1권 3장
마키아벨리에게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기심에 가득 찬 개인들이다. 때때로 선한 행위를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이며, 긴 시간을 두고 볼 때 인간의 마음은 결코 선하지 않다는 것이 증명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특히 권력을 지향하는 정치가들이 욕심을 버린다는 것은 ‘권력욕 없이 권력을 추구한다’는 주장처럼 자기모순을 의미할 뿐이다. 아마도 공화주의자 마키아벨리는 한 사회를 누가 어떻게 설계해야만 하느냐는 질문에 정답은 없다고 본 것 같다. 바꿔 말해 특정한 군주가 특정한 정치체제를 선택해야만 하는 필연성은 없으며, 바로 그런 이유로 군주는 항상 도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때 결정은 합리적 대화가 아니라 힘과 권력의 무자비한 사용을 통해 이루어지고, 이처럼 선택의 여지를 없애야 그가 세운 사회가 안정될 수 있다고 보았다. 마치 수학적 공리체계에서 공리 자체는 더 이상 증명될 수 없고, 그런 점에서 자명성(自明性)을 전제했던 것과 흡사하다. 나의 군주가 이런 정치체제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통치하는 것을 나는 의심의 여지없이 자명하게 즉 당연하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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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사회보다는 정치권에서 마키아벨리즘이 더 일상적이라는 사실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합리적 대화가 아니라 힘에 의해 권력구조가 결정된다는 것, 즉 “나는 너에게 복종을 요구해도 너는 나에게 복종을 요구할 수 없다”는 권력 원칙의 가장 큰 특징은 그 ‘비대칭성’에 있다. 다른 한편, 모든 사회의 일반 구성원들 사이에 통용되는 기본적 윤리의 가장 큰 특징은 항상 ‘대칭성’에 있다.
‘비대칭성’은 구교나 개신교의 십계명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십계명 중 앞의 세 개 혹은 네 개의 계율은 다른 종교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믿음의 정초에 해당하므로 비대칭적 계율이다. 즉, 다른 종교에서도 자신의 종교만을 믿을 것을 요구할 때 그 선택에 합리적 대화가 존재하기 힘들다. 다른 한편 나머지 계율인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말 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등은 대칭적이며, 이 계율의 정당성은 합리적인 대화를 통해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내가 너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당연히 너도 나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고, 거짓말이 횡행하는 사회는 유지가 될 수 없다는 점에서 ‘거짓말 금지’는 합리적 대화가 가능한 대칭적 윤리규범이다.
이쯤해서 과거 동북아시아에 통치이념을 제공했던 유가(儒家)의 정치사상과 마키아벨리의 정치공학을 비교해보는 것도 ‘마키아벨리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유가는 모든 인간이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네 개의 단서(四端)를 하늘로부터 부여 받았으며 그런 점에서 누구나 선(善)한 본성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다만 구름이 해를 가리듯, 인간의 욕심이 이 선한 본성을 가려서 사회의 혼란이 야기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통치의 기본도 백성으로 하여금 욕심을 버리고 자신의 본성으로 돌아가도록 만드는 데에 있다. 그러나 한국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모든 왕조는 대규모 폭력을 통해서 수립되었다. 그런 점에서 유가의 전통적 윤리인 삼강오륜(三綱五倫)은 이미 세워진 정치체제 안에서의 윤리라고 간주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마키아벨리의 정치공학이 결코 서양의 폭군정치를 합리화하는 데에만 국한되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심지어 현대 사회의 구석구석에서도 마키아벨리즘은 크던 작던 여러 형태로 끊임없이 사용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사실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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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1550년 판본의 타이틀 페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체제를 처음 세울 때 마키아벨리즘의 사용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과연 정당한지에 대한 질문은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체제의 기초에 불가피하다고 보이는 자의성은 설사 그것이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더라도 다른 체제로의 대체가능성으로 인해, 또 자의성 자체가 정당성의 반대개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체제수립과 관련한 ‘마키아벨리의 문제’를 그 어떤 종류의 폭력도 사용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