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도덕 - 마키아벨리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646회본문
|
사람들을 잘 대우하던지 아니면 아예 철저하게 망가뜨려야 한다. 왜냐하면 조그마한 상처를 입으면 복수를 할 수 있지만, 극심한 상처를 받으면 복수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려면 복수를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혹독해야 한다.
- [군주론] 3장
위의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군주론]은 명확하고 간결한 언어로 쓰여 그 뜻을 이해하는 데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1513년에 쓰여지고 마키아벨리의 사후에 출판된 이 책에 대해서는 극과 극으로 다른 해석들이 존재한다. 아마도 서양 사상사에 이름을 남긴 철학자치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은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이샤 벌린(Isaiah Berlin)의 뛰어난 에세이 [마키아벨리에 대한 질문]에 소개된 기존의 해석들 중 몇몇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스피노자는 마키아벨리의 저서를 폭군정치에 대한 경고로서 일종의 풍자로 해석했다. 피히테는 실제 역사를 움직이는 힘을 성찰하면서 기독교적 윤리를 공격하기 위한 반(反)그리스도교적인 문헌으로 해석했으며, 그와 다르게 마키아벨리를 기독교도로 간주한 학자도 있다. 크로체는 정치 영역에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악’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직시한 ‘분노한 휴머니스트’로 간주했으며, 반면 스위스의 몇몇 해석자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휴머니스트’로 간주했다. 카시러는 마키아벨리를 윤리적으로 중립적인 차가운 정치 공학자로, 헤겔은 몇몇 지엽적 원칙을 넘어서서 혼돈에 빠지기 쉬운 사회의 요소들을 합하여 하나의 전체를 만들려던 천재로 보았다. 베이컨에게 마키아벨리는 이상 사회에 대한 환상을 버린 ‘울트라 현실주의’였고, 공산주의 이상사회를 꿈꾸던 마르크스, 엥겔스에게는 ‘쁘띠 부르조아지’의 껍데기를 벗어버린 ‘계몽주의의 거목’이었다.
일반인들에게 마키아벨리즘이란 “목적을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도 정당화된다”는 말로 요약되지만, 서양의 철학자들이 짧고 명확하게 쓰인 [군주론]에 대해 이처럼 다양하고 상이한 해석들을 내놓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 이유는 비교적 명확하게 추적할 수 있다. |
|
|
사랑의 대상과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 중에서 어떤 쪽이 더 바람직할까? 어쩌면 우리는 양자 모두가 바람직하다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과 공포는 동시에 존재하기 어려우므로 만일 이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사랑받는 것보다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 훨씬 안전
하다.
하다.
- [군주론] 3장
|
|
|
|
공화국을 만들고 법을 세우려는 사람들은 반드시, 모든 사람은 악하며, 기회만 있으면 항상 악한 마음을 사용하려 한다는 것을 가정해야 한다.
인간은 필요하지 않으면 결코 선행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혼돈과 혼란이 만연하게 된다.
– [로마사 논고] 1권 3장
|
|
‘비대칭성’은 구교나 개신교의 십계명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십계명 중 앞의 세 개 혹은 네 개의 계율은 다른 종교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믿음의 정초에 해당하므로 비대칭적 계율이다. 즉, 다른 종교에서도 자신의 종교만을 믿을 것을 요구할 때 그 선택에 합리적 대화가 존재하기 힘들다. 다른 한편 나머지 계율인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말 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등은 대칭적이며, 이 계율의 정당성은 합리적인 대화를 통해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내가 너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당연히 너도 나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고, 거짓말이 횡행하는 사회는 유지가 될 수 없다는 점에서 ‘거짓말 금지’는 합리적 대화가 가능한 대칭적 윤리규범이다.
이쯤해서 과거 동북아시아에 통치이념을 제공했던 유가(儒家)의 정치사상과 마키아벨리의 정치공학을 비교해보는 것도 ‘마키아벨리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유가는 모든 인간이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네 개의 단서(四端)를 하늘로부터 부여 받았으며 그런 점에서 누구나 선(善)한 본성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다만 구름이 해를 가리듯, 인간의 욕심이 이 선한 본성을 가려서 사회의 혼란이 야기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통치의 기본도 백성으로 하여금 욕심을 버리고 자신의 본성으로 돌아가도록 만드는 데에 있다. 그러나 한국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모든 왕조는 대규모 폭력을 통해서 수립되었다. 그런 점에서 유가의 전통적 윤리인 삼강오륜(三綱五倫)은 이미 세워진 정치체제 안에서의 윤리라고 간주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마키아벨리의 정치공학이 결코 서양의 폭군정치를 합리화하는 데에만 국한되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심지어 현대 사회의 구석구석에서도 마키아벨리즘은 크던 작던 여러 형태로 끊임없이 사용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사실에 가깝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