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견훤이 아직 강보에 싸여 있을 때였다. 아버지는 들에서 밭을 갈고 있고, 어머니는 밥을 나르러 갔었다. 아기를 수풀 밑에 두었더니 호랑이가 와서 젖을 먹였다. 마을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이상하게 여겼다. 과연 자라면서 체격과 용모가 웅대해지고 특이했으며, 기개가 호방하고 범상치 않았다.” - [삼국사기]에서
한마디로 견훤은 호랑이가 젖을 먹여 키운 아이이다. 그의 아버지는 아자개, 상주 가은현 사람인데, 농사를 지며 생활하다가 뒤에 출세하여 상주를 다스리는 장군이 되었다. 성을 이씨로 바꾸었던지 견훤 또한 이씨였다가 나중에 ‘견’으로 성을 삼았다고, [삼국사기]는 전하여 준다. 호랑이가 키운 아이답게 창을 베고 적을 기다릴 정도로, 기백이 항상 다른 군인들을 앞섰다. 그런데 이 아이의 최후는 쓸쓸하기 그지없다.
“견훤이 잠자리에서 아직 일어나지 않았는데, 멀리 궁정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렸다. 견훤이 아들 신검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소리냐?’ ‘왕께서 연로하셔서 군국 정사에 어두우시므로, 맏아들 신검이 부왕의 자리를 섭정하게 되었다고, 여러 장수가 축하하는 소리입니다.’ 그러면서 신검은 견훤을 금산사 불당으로 옮기고, 파달 등 장사 30명을 시켜 지키게 했다. 그때 노래 하나가 유행했다. 가엾은 완산 아이가/아비를 잃고 눈물 흘리네.” - [삼국유사]에서
아들 신검과 갈등 끝에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는 장면이다. 호랑이가 키운 아이는 어느덧 가엾은 완산 아이가 되어 눈물짓는다. 그 사이가 너무 멀어 보이는 만큼 견훤의 생애는 극과 극을 달려온 비극의 파노라마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