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단 - 한국인이 노래하는 틀 > 전해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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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단 - 한국인이 노래하는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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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56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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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을 잘 모르는 사람도 ‘타령’이니 ‘굿거리’니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이것들은 장단의 이름입니다. 이외에도 ‘자진모리’니 ‘휘모리’니 하는 장단이 있습니다. 이때 ‘모리’란 ‘몬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자진모리는 ‘자지러지게’ 몰고 나가는 것이고 휘모리는 ‘휘몰아서’ 빠르게 나가는 게 됩니다. 이 두 장단은 한국 음악에서 아주 빠른 장단에 속합니다. 여러분은 혹시 90년대 중반에 유행했던 가요 중에 판소리 ‘흥보가’를 딴 ‘흥보가 기가 막혀’라는 노래를 기억하는지요. 이 노래 중 ‘흥보가 기가 막혀 흥보가 기가 막혀’하는 부분이 바로 휘모리 장단입니다.
우리 음악에만 해당하는 ‘노래하는 틀, 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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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단은 노래하는 틀을 말합니다. 장단은 한국 음악에만 해당되는 것으로 서양 음악에 통용되는 리듬이나 박자와는 다릅니다. 한국 음악의 장단은 세계 음악계에서 대단히 복잡한 것으로 이름이 높습니다. 저는 판소리를 자주 듣는데, 장단은 따로 배우지 않으면 도저히 따라 할 수가 없더군요. 그러나 서양 음악의 박자는 고전음악이나 팝을 막론하고 비교적 쉽게 따라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장단에 대한 이야기는 음악을 직접 들려주지 않고서는 설명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장단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한국 음악의 박자와 강약에 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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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장단인 굿거리를 서양 악보로 표시한 것.
한∙중∙일 중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3박자를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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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음악은 궁중음악이든 민속악이든 거의 모든 음악이 3박자로 되어 있습니다. 그 예를 알기 위해 멀리 갈 것도 없이 국민 민요라 할 수 있는 아리랑을 불러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춤의 하나인 살풀이를 ‘능청거린다’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이것은 3박자의 음악에 맞추어 추기 때문입니다. 우리 춤처럼 너울거리고 출렁거리는 모습은 주로 4박자로 되어 있는 서양 음악에서는 나오기 힘든 몸짓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같은 문화권인 한·중·일 가운데 일본 음악이나 중국 음악은 2박자로 되어 있는 것에 비해, 유독 우리 음악만 3박자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야금의 세계적인 명인인 황병기 선생이 한번은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만일 가장 비서양적인 것을 동양적이라고 한다면 한국 음악이야말로 가장 동양적”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음악은 서양 음악과 같이 합주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의 대표 가요인 트로트를 보면 이 노래는 기본적으로 2박자로 되어 있으니 한국의 전통을 따랐다고 할 수 없습니다. 트로트 가수들은 트로트 가요를 전통가요라 부르자고 하는데, 박자로 보면 그럴 수 없습니다. 음계도 일본식 음계가 많아 더욱더 우리 전통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러나 우리가 즐겨하면 우리 것이 되는 것이니 굳이 외국 것이라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 우리 음악이 3박자가 됐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설이 없습니다. 천지인 삼재(三才)에서 나왔다느니 한민족이 원래 기마 민족이어서 말 탈 때 움직이는 박자가 3박자라느니 하는 설이 있습니다마는 모두 추정에 불과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민족은 이와 같이 중국과는 다른 문화 체계를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노래를 부를 때에는 앞 음절을 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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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우리나라 전통 노래의 박자(beat)도 독특합니다. 한 나라의 노래는 그 나라 사람들의 언어 구사법을 따라 불리게 됩니다. 말하는 것 자체가 노래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겁니다. 우리말은 항상 맨 앞 음절에 악센트가 들어갑니다. 예를 들어 ‘안녕!’라고 할 때에도 앞의 음절인 ‘’에 악센트가 들어갑니다. 그래서 미국인의 흉내를 내려면 안'' 하면서 뒤의 음절에 힘을 주면 됩니다. 요즈음에 이와 유사한 표현이 떠돌고 있지요? 한국인이 미국 사람이 하는 한국말을 흉내 낼 때 “나는 미'쿡' 사람입니다.’라고 하는 게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민요를 보면 모두 이렇게 앞 음절에 힘이 들어갑니다. 예를 들어 ‘한 오백년’을 할 때에도 ‘하안(恨)’ 많은 이라고 하면서 앞 음절인 ''을 아주 강하게 발음합니다.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음악이 그렇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애국가는 한국적 어법이 반영되지 않은 서양식 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애국가의 가사 진행은 두 번째 음절에 악센트가 들어가는 전형적인 서양 노래입니다. 그러니까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진행되고 있으니 서양 노래라는 겁니다.(‘해-’와 ‘두-’에 악센트가 들어간다.) 이 점에 관해 국악학계의 원로인 권오성 교수께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동해물과’를 애국가를 부를 때처럼 ‘동’과 ‘해’ 사이를 끊고 ‘해’에 악센트를 주면 ‘동해의 물(水)’이 아니라 ‘동쪽의 해물(海物)’이라는 뜻이 된다는 것입니다.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왕이면 우리 어법에 맞는 노래가 애국가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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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 때 생겨나 이제는 전 국민의 구호가 된 '대한민국'.
 
‘대한민국’ 응원 구호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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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해 2002년 월드컵 때 생겨나 이제는 전 국민의 구호가 된 ‘대한민국’은 우리 어법에 맞게 생겨난 구호입니다. 이 구호는 국민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났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일 겁니다. 여러분은 이 구호의 비밀을 아는지요? 저는 이 구호를 ‘한국형 4박자’라고 부릅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우리가 응원할 때에는 4박자 형태로 된 노래로 합니다. 그래야 신이 나지요. 그렇지 않고 3박자를 지닌 우리 민요로는 응원하기가 힘듭니다. 생각해보십시오. 3박자라 넘실거리는 노래인 아리랑을 불러보면 흥은 나지만, 축구처럼 박진감 있는 경기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윤도현 밴드가 아리랑을 부를 때에도 3박자를 4박자로 바꾸어서 부른 것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구호가 나오게 되는데 이것을 한국형이라고 하는 것은 악센트가 맨 앞 음절에 오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을 미국인에게 발음하라고 하면 백이면 백 ‘대한민-국’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그들의 어법이 그렇게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음악도 이렇게 구성되어 있는데, 4박자일 경우 첫 박에도 강이 있지만 실제로 악센트가 들어가는 것은 3번째 음입니다. 이것을 직접 실연하면 이해하기 쉬운데 말로 쓰다 보니 어려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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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박자에서는 4분 음표(♩)를 한 박자로 치는데 이 응원 구호의 첫 박은 4분음표로 나뉘지 않는다. 이것은 첫 박이 악센트가 있어 점 4분 음표(♩.)로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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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4/4 박자로 된 서양의 '337'박수'에서는 리듬이 정확하게 4분 음표로 구분되고 악센트는 세 번째 박에 나온다.

여러분은 ‘쿵쿵따-다, 쿵쿵따-’라는 구호에 익숙하지요? 이게 바로 서양(대중) 음악의 기본 비트입니다. 4박자인데 3번째 음절(따)에 악센트를 주는 것이지요.(리듬이 가장 김) 그래서 그들은 대한민국을 ‘대한민-국’이라고 발음하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 우리는 맨 앞 음절에 힘을 주어 말하니 ‘대-한민국’이 됩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라는 응원 구호는 그 틀은 서양의 4박자를 빌려온 것이지만 강약의 구성은 우리 어법을 따랐기 때문에 한국형 4박자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부르는 가요들은 모두 서양 박자인 ‘쿵쿵따-’를 따라 만든 것입니다. 힙합이든 랩이든 모두 ‘쿵쿵따-’를 대입하면 박자가 딱 맞아떨어집니다. 이렇게 미국 노래를 많이 불렀어도 정작 우리가 응원 구호를 만들 때는 우리 어법을 따랐습니다. 몸에 밴 전통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그래서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