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유일무이한 1인 오페라 - 판소리 > 전해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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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유일무이한 1인 오페라 - 판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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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45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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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하면 생각나는 시가 있습니다.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洞口)’라는 시입니다. 이 시는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습니다./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로 진행됩니다. 판소리는 이렇게 거칠고 쉰 소리로 부릅니다. 그래서 판소리는 다른 나라의 음악과 비교해볼 때 아주 독특한 성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북 하나에 맞추어, 혼자 노래하는 ‘1인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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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이 고수의 북 반주에 맞춰 모든 역할을 다하는 판소리는 가히 '1인 오페라'라고 부를 수 있다. <출처 : Steve46814 at ko.wikipedia.com>

우리 판소리는 2003년에 유네스코에 세계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어떤 특징 때문에 세계적인 유산이 된 것일까요? 그 소리가 거친 것도 그렇습니다마는 그보다는 반주라고는 북밖에 없고 그에 맞추어 가수가 여러 등장인물의 역할을 혼자 다 한다는 면에서 그 독특함을 인정받은 것입니다. 전 세계 어디에 가수 한 사람이 북 하나에만 맞추어 혼자 울고 웃으면서 노래하는 성악이 있겠습니까?
판소리는 ‘1인 오페라(one-man opera)’라고 하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소리꾼이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역할을 합니다. 춘향전이면 춘향이부터 이몽룡, 심지어는 변학도나 아전들까지 모든 역할을 소리꾼 혼자 다 해냅니다. 특이한 점은 또 있습니다. 북 반주를 하는 고수와 대화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고수는 단순한 반주자가 아니라 등장인물 역할까지 하는 겁니다.
 
 
 
이런 예는 세계의 다른 성악에서는 찾기 어렵습니다. 서양의 성악가가 악단의 반주에 맞추어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다 느닷없이 연주자들과 대화를 한다면 얼마나 이상한 일이겠습니까?
게다가 판소리는 그 이야기가 보통 긴 게 아닙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심청이가 태어나서부터 자라서 뱃사람들에게 팔려가 바다에 빠져 죽고 다시 살아나 왕비가 되어 아버지를 만나기까지 그 얼마나 긴 시간입니까? 이걸 다 노래하려니 몇 시간씩 걸립니다. 그런데 판소리는 혼자 하는 것이니 이 몇 시간 동안을 홀로 노래해야 합니다. 서양 오페라는 2~3시간짜리를 여럿이 번갈아 노래해도 힘들다고 하는데 판소리는 서너 시간을 혼자 노래하니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기괴하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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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흥부가를 완창하는 명창, 안숙선(2006, 세종문화회관). <출처 : Brian Negin at en.wikipedia.com>
 
 
현재 전해지는 판소리는 유교적 내용을 담은 5곡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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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판소리는 12곡(바탕)이 있었는데 7곡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지금은 유교의 기본 덕목인 충(忠)∙효(孝)∙열(烈)∙(형제간의) 우애(友愛) 등을 다룬 수궁가∙심청가∙춘향가∙흥부가∙적벽가, 5곡만 남아 있습니다. 나머지 7곡은 남녀의 에로틱한 관계를 많이 다루었든지 너무 야하다는 이유로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사정이 이렇게 된 것은, 19세기 중반에 판소리를 정리한 사람이 신재효라는 중인 출신이었다는 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신재효는 유교적인 지식인의 입장에서 유교에 걸맞은 것만 골라 정리한 것입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그게 당연할 터이지만 우리로서는 없어진 소리가 아깝기 그지없습니다.
 
굿판에서 기원한 천민들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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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는 ‘판’과 ‘소리’가 합해진 단어입니다. 여기서 판이란 ‘소리꾼’과 북을 쳐주는 ‘고수’, 그리고 ‘구경꾼’들이 모인 자리를 의미합니다. 이 셋이 모여야 판소리라는 음악이 형성됩니다. 판소리는 우리나라 민속 예술 가운데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판소리만큼 계층을 불문하고 모든 조선인이 좋아한 장르는 없었습니다. 판소리의 근원지는 보통 호남의 굿판으로 잡습니다. 굿판에서 악사들이 여흥으로 노래하던 것이 점차 발전해 17세기 후반부에 처음으로 판소리가 태동하게 됩니다. 굿판에서 나왔으니 천민들이 하던 예술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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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도(왼쪽)와 김준근의 기산풍속도첩(오른쪽). 판소리는 소리꾼,고수 그리고 구경꾼, 셋이 모여야 형성된다.
그래서 초기에는 양반들이 철저하게 외면합니다. 그러나 판소리의 매력에 눈을 뜬 양반들이 하나둘씩 생겨나 판소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됩니다. 아마도 양반들이 보기에 그 소리 하는 모습이 천박하게 보였겠지요. 조용히 앉아서 시조나 하던 양반들이 마구 소리를 질러대는 판소리를 보면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자꾸 듣다 보니 판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그런 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양반들도 판소리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그 결실이 위에서 본 것처럼 신재효의 판소리 집대성으로 결말을 맺게 됩니다.
한국적인 정서를 담아, 양반 사회로도 퍼져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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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는 한국적인 정서를 많이 가진 예술이라 할 수 있는데 양반들도 한국인이니 그 정서가 맞았던 겁니다. 그래서 19세기쯤 되면 양반들이 잔치하는 데에 판소리꾼이 자주 초청됩니다. 그 가운데에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양반의 아들이 과거 급제했을 때의 일입니다. 이 경우에 아버지는 반드시 파티를 크게 해주어야 하는데, 이때 항상 소리꾼들이 초대받았습니다.
 
 
지금도 판소리를 들어보면 한문이 많이 나와 이해하기 곤란하지요? 일자무식인 판소리꾼들이 어떻게 한문 문장을 읊조릴 수 있었을까요? 판소리에 묘미를 느낀 양반들이 소리꾼을 불러다 어려운 한문을 주면서 외워서 노래하라고 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창자들은 무조건 외워서 노래했습니다. 그래야 돈을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판소리가 양반 사회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가사가 고급스러워지니까 양반들이 더 좋아하게 되었고 급기야 어떤 소리꾼은 고종 앞에서 소리를 해서 고종을 크게 감동시킨 일도 있었습니다. 소리에 감명받은 고종은 소리꾼의 손을 덥석 잡았고 그 소리꾼은 손을 씻지 않았다는 후일담도 전해집니다. 이처럼 판소리는 조선의 민속 예술 가운데 유일하게 전 계층이 좋아한 장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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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백(李東伯), 명창 중 최고 벼슬에 오른 사람, 고종으로부터 정3품에 해당하는 통정대부의 벼슬을 받았다.
 
 
텁텁하고 거친 소리인 천구성, 소리하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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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하는 분들에게 제일 실례되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소리가 참 곱다 혹은 예쁘다’고 하면 제일 실례가 됩니다. 판소리에서는 가장 좋은 목소리로 쇠망치 소리와 같이 견고하고 강한 ‘철성’과 쉰 듯이 컬컬하면서도 힘으로 충만한 ‘수리성’이 합쳐진 ‘천구성’을 친답니다. 천구성이란 ‘하늘이 내린 목소리’라는 것인데 판소리에서는 이처럼 텁텁하고 거친 소리를 좋아합니다.
그러다 소리를 고음으로 질러대면 그야말로 돼지 멱따는(?) 소리가 나는데 이것을 ‘쐑소리’라고 합니다. 이 소리를 잘해야 소리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이러한 발성법은 고운 소리를 추구하는 서양 성악의 벨칸토 창법과는 강한 대조를 이룹니다. 서양에서는 머리를 울려 깨끗한 소리 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판소리는 목을 파열시켜 거친 소리 내는 것을 좋은 소리로 쳤으니 양자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판소리에는 이렇듯 한국인의 정서적 특징이라 할 것들이 많이 녹아 있습니다. 판소리를 통해서 본 한국인들은 야성적이고 거칩니다. 이런 모습은 현대에 사는 우리들에게도 남아 있을 터인데 여러분은 어디서 이 모습을 보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