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경로를 통해서였든 김정호는 지도와 지리학 자료를 풍부하게 참고할 수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청구도], [ 동여도], [대동여지도]와 같은 지도들, 그리고 [ 동여도지] [ 여도비지] [ 대동지지] 같은 지리서를 탄생시켰다.
[청구도]는 조선 팔도를 세로 22개, 가로 29개의 눈금으로 나눈 다음 지형을 정확하게 그려 넣은 것으로 정확도가 매우 높다. 또한, 상세한 지지를 덧붙여 자연지리, 역사지리, 경제지리를 총괄하는 성격을 띠었다.
30여 년 공을 들여 완성했다는 [대동여지도]는 함경북도 온성에서 제주도까지 22개의 첩으로 만들었는데, 이 첩을 접으면 하나의 책이 되고 전부 펼쳐놓으면 약 가로 3.8미터, 세로 6.7미터 크기의 한반도 지도가 된다. 서로 맞붙여놓은 이 지도들은 도로와 산과 들과 강이 연결되고 각 지역의 위치가 드러난다. 또한, 동해안의 포항 일대 지형과 제주도에서 육지까지의 거리 등 몇몇 군데를 제외하면 오늘날의 지도와 거의 일치할 만큼 정확하다.
[대동여지도]를 완성한 김정호는 [대동지지] 작업에 몰두했다. 그는 지도가 완전한 역할을 수행하려면 상세한 지지(地誌, 어떤 지역의 지리적 현상을 조사하고 연구하여 그 특색을 적은 책)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완성한 32권의 [대동지지]는 그때까지 우리나라의 지지에 없었던 역사적 사실들을 풍부하게 기술해 지리학의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대원군이 [대동여지도]를 압수하고 김정호를 옥사시켰다?
김정호의 삶에서 가장 많이 왜곡된 부분은 그의 죽음에 대한 내용이다. [조선어독본]은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대원군에게 바치자 대원군이 지도판을 압수해 불태워버리고 김정호 부녀를 옥사시켰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는 대원군을 매도하기 위한 의도적인 날조라고 비판받고 있다. 우선 불태워졌다는 [대동여지도]가 비록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가 현재까지 남아 있다. [대동여지도]는 목판에 새긴 지도로, 총 60여 매의 목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12매가 불에 탄 흔적 없이 오늘날까지 전한다. 또한 [고종실록]을 비롯한 당시의 기록 어디에도 그런 사실을 찾아볼 수 없다.
불과 150여 년 전의 인물이지만 안타깝게도 김정호에 대해서는 언제 태어나서 어떻게 죽었는지 전하는 기록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