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한 비극 오페라 세계 > 전해주는 이야기

본문 바로가기
사이드메뉴 열기
공부대통령 공부이야기 입시아카데미


5d3edd3d579f28d5b4b84e93f29d0215_1596530159_355.jpg


5d3edd3d579f28d5b4b84e93f29d0215_1596529628_9221.jpg

 

처절한 비극 오페라 세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735회

본문

 

오페라를 보는 관객들은 대체로 희극보다 비극 오페라를 좋아합니다. 오페라에서 희극보다 비극의 수가 훨씬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 순위 1-10위 가운데 희극은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과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뿐, 나머지는 모두 비극 작품들이랍니다.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와 [리골레토], 푸치니의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 등 여주인공의 죽음으로 끝나는 처절한 비극들이 인기 순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집에서는 개그 프로그램을 열심히 보는데, 왜 오페라 극장에서는 굳이 비극이 보고 싶어질까요? 아마도 오페라는 TV처럼 일상적이 아닌 일회적인 체험이어서 그렇겠지요. 날마다 보는 TV 연속극에서는 시청자 대부분이 ‘고생 끝에 행복을 찾는 주인공’을 보고 싶어하지만, 일 년에 한 번쯤 큰 맘 먹고 찾아가는 오페라 극장에서는 평소에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충격이나 감동을 원하게 되는 모양입니다.
17-18세기 신화 비극과 오페라 세리아
2049587376_dYeq94Vs_17.jpg
오페라 초창기인 17세기에는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한 오페라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신화 중에는 비극적인 소재가 많았지만, 왕실이나 대귀족의 결혼 축하연, 대관식 또는 전승 축하연의 일부로 오페라를 공연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보니 축제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오페라의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바꾸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현재까지 악보가 남아있는 최초의 오페라 [에우리디체](1600)도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귀족의 결혼을 축하하는 오페라 공연인데, 주인공 부부가 영이별하는 결말을 보여줄 수는 없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에우리디체]와 같은 소재를 다루었더라도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1607)는 원래의 신화 줄거리에 충실하게, 부부가 헤어지는 비극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영국을 대표하는 17세기 작곡가 헨리 퍼셀은 트로이 전쟁 후일담을 소재로 [디도와 에네아스]를 작곡해, 우아하고 정적인 비극 오페라의 모범을 세웠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장 바티스트 륄리가 역시 신화와 영웅담을 소재로 한 ‘서정비극(tragedie lyrique)’이라는 장르를 창시했고, 18세기에 장 필립 라모가 이 전통을 계승해 비극적인 작품들을 발표했습니다.

2049587376_NSjno5Eh_1.jpg
고전주의 시대 비극 오페라 [메데아]에 출연한 마리아 칼라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은 오늘날의 의미에서 볼 때 본격적인 비극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흔히 신화를 소재로 한 이탈리아의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 작품들을 ‘오페라 부파(opera buffa. 희극 오페라)’의 반대 개념으로 보아 ‘비극’으로 규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페라 세리아 대부분은 진지한 내용이나 비극적 사건을 다루고 있다 하더라도 결말에 가서는 화해나 용서, 결혼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으니. 비극으로 간주하긴 어렵겠지요. 비발디의 [오를란도 푸리오소](광란의 오를란도), 헨델의 [아리오단테], 글루크의 [알체스테] 등도 모두 비극적인 상황을 다루고는 있으나 결말은 해피엔딩입니다. 프랑스 서정비극을 계승한 라모의 [이폴리트와 아리시]같은 작품도 마찬가지랍니다. 모차르트도 [피가로의 결혼] 같은 희극 오페라 외에 여러 편의 오페라 세리아를 작곡했습니다. [이도메네오]나 [티토 왕의 자비]가 그 대표작인데, 이들 역시 극의 진행 중에는 비극적 상황의 비장미를 보여주지만 결말은 결혼과 용서, 화해와 축복입니다. 글루크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도 결말은 부부가 다시 함께 지상의 삶을 얻는 것으로 처리되었습니다. 처절한 파멸과 복수의 극인 케루비니의 [메데아] 정도가 고전주의 시대의 본격 비극 오페라로 꼽힐 수 있습니다.
 
 
19세기 영웅비극
2049587376_dYeq94Vs_17.jpg
신화비극이 ‘신들의 뜻에 의한 비극적 결말 또는 용서의 해피엔딩’, 그러니까 ‘운명비극’이라면, 베르디로 대표되는 19세기 영웅비극은 성격이 운명을 결정하는, 이른바 ‘성격비극’입니다. 14세기 영국시인 제프리 초서는 [캔터베리 이야기]에서 “비극이란, 옛 책들이 상기시켜 주듯/ 큰 영화를 누리고 살다가/ 높은 지위에서 불행 속으로 추락하여/ 비참하게 끝장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가리키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셰익스피어 비극들은 주인공이 죽음에 이르는 고난의 역정을 그리는데, 갑작스런 죽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극심한 심리적 고통을 겪다가 자신이 왜 이런 비극에 이르게 되었는가 하는 진실을 깨닫고 나서 마침내 죽음에 이르는 긴 과정을 보여줍니다. 평범한 사람이 오래 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나는 등의 이야기는 비극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의 주인공 유형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비극을 초래하는 성격상의 결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베르디의 [오텔로](셰익스피어 원작 제목은 [오셀로]는 열등의식과 질투심, 그리고 남의 간교한 말을 쉽게 믿어버리는 부주의함이 그 결함입니다. [맥베스]의 경우에는 과도한 야심, 그리고 유혹에 약한 심성이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베르디의 [돈 카를로](프리드리히 쉴러 원작)에서 개혁자인 로드리고(포자 후작)와 카를로 왕자의 비극적 결말은 성격에 의한 것이 아닌 상황비극이고, [시몬 보카네그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시몬 보카네그라]의 경우에는 주인공은 죽더라도 서로 사랑하는 젊은 주인공들이 살아남아 관객에게 희망을 주기 때문에, 역시 완전한 비극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2049587376_KpExtPqR_2.jpg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의 여주인공 브륀힐데는 영웅비극의
대표적인 캐릭터다.
같은 영웅비극이라 해도 바그너 오페라의 영웅 주인공들은 베르디 주인공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유령선 선장은 오만한 성격 때문에 신들의 저주를 받았고, [탄호이저]의 주인공인 중세의 기사 탄호이저는 예술가의 창의성과 탐구심을 발휘했다가 사회에서 배척당하고 교회에서 파문당하지요. 역시 중세의 전설과 문학에서 소재를 가져온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는 남녀 주인공의 과도한 열정이 파멸을 불러오고, [니벨룽의 반지]에서 신들의 세계는 신과 인간의 탐욕 때문에 무너집니다. 이 세계를 구원해야 할 순수한 영웅 지크프리트 역시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간계의 함정에 빠져서 죽게 됩니다. 이 작품에서 지크프리트보다 더욱 영웅적인 주인공은 최후에 말을 타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여주인공 브륀힐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발적으로 자신의 죄를 밝히고 화형대로 걸어올라가는 벨리니 [노르마]의 여주인공도 영웅비극의 유형에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19세기 시민비극
2049587376_dYeq94Vs_17.jpg
우리가 오늘날 흔히 비극 오페라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시민비극’에 속하는 작품들입니다. 높은 신분과 기품을 지닌 영웅적 주인공이 사라진 시대, 평범한 시민들이 주인공이 되는 비극이지요. 19세기에 ‘시민비극’이라는 용어가 생겨난 이유 자체가, 비극이란 본래 평번한 사람들과는 다른 ‘고귀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장르였기 때문입니다. 시민비극 오페라의 특징은 대체로 여주인공의 희생이 강요된다는 점입니다. 오페라 극장에서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며 열광하는 대부분의 작품은 여주인공이 비장한 죽음을 맞이하는 시민비극이지요. 영웅비극에서처럼 주인공의 성격적 결함 때문에 비극이 초래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시민비극의 여주인공들은 대개 아름답고 순수한 청순가련형 여성이며, 상황비극의 주인공들입니다.
도니체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여주인공처럼 세상 물정을 모르는 채 티없이 한 남자만을 사랑했지만 결국 주변 상황에 밀려 비극 속으로 던져지는 희생양이죠. 또는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푸치니 [라 보엠]의 미미처럼, 사랑하다가 연인과 헤어져 병으로 죽거나 [나비부인]의 초초상처럼 배신당해 자결하기도 합니다. 혹은 푸치니의 [토스카]나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의 경우처럼 목숨을 걸고 연인을 살리려다 보람도 없이 둘 다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2049587376_QMmfqnJ6_3.jpg
도니체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는 여주인공이 희생을 강요당하는 시민비극의 대표적 작품이다.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나 마스네의 [마농]처럼 여주인공이 자신의 성격적 결함 때문에 죽게 되는 경우는 오페라에서 흔치 않습니다. 아무 죄도 없는 순수한 여성이 죽어야 관객의 감동과 눈물을 이끌어낼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베르디의 [아이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조르다노의 [안드레아 셰니에]처럼 지상에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천국에서 이루려고 두 사람이 자발적으로 함께 죽음을 선택하는 경우는 행복한 죽음에 속합니다. 비제의 [카르멘] 이후, 오페라 무대는 ‘현실보다 더 적나라한 현실의 비극’을 보여주게 됩니다. 특히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나 [팔리아치]와 같은 결투나 치정살인이 비극의 중요한 소재가 되었습니다.
 
 
음악으로 비극적 정서를 표현하는 법
2049587376_dYeq94Vs_17.jpg
음색의 혁명
베르디는 극적인 효과를 높이기 위해 맥베스 부인 역에 음색이 거친 소프라노를 기용해서 당시의 관객을 놀라게 했습니다. 분노와 격정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때로는 미성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베르디는 말했습니다.

단조 사용과 장단조의 잦은 교체
비극에는 희극보다 전반적으로 단조가 자주 쓰입니다. 비극적 효과를 더욱 강렬하게 하기 위해서는 가사의 내용이나 분위기에 따라 극적인 방식으로 장도와 단조를 교체하는 것이 더욱 대비효과가 큽니다.

악기의 적절한 사용
어둡고 절망적인 분위기를 표현하는 데는 콘트라베이스를, 분노의 폭발을 표현할 때는 타악기, 특히 팀파니를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음산하고 위협적인 분위기를 만들 때는 현악기군의 빠른 트레몰로, 애절하고 구슬픈 분위기를 만들 때는 바이올린이나 첼로 또는 오보나 호른 솔로를 사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