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현악 작품 속에서 독주 바이올린은 여성의 역할을 자주 맡아왔지만, 대개 바이올린이 상징하는 여인은 그다지 착한 여인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때때로 바이올린이 악녀나 마녀, 또는 저승사자가 되기도 하는데, 그러한 악마적 이미지는 바이올린과 무척 잘 어울리지요. 바이올린을 악마적인 악기로 취급했던 작곡가들로는 생상스와 말러가 대표적입니다.
생상스는 일찍부터 바이올린의 악마적 이미지에 주목하여 그의 관현악곡 [죽음의 무도]에서 바이올린을 공동묘지에서 죽음의 춤을 추는 마녀로 묘사했습니다. 누구든 이 곡의 소름 끼치는 바이올린 솔로를 한 번만 들어도 그 멜로디를 절대 잊지 못할 정도로 바이올린의 마성(魔性)이 유감없이 발휘된 곡이지요.
말러는 이보다 한 수 더 떠서 그의 [교향곡 제4번] 2악장에서 바이올린을 한 음 높게 조율하여 신경 거슬리는 기괴한 바이올린 음향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곡에서 한음 높게 조율된 바이올린은 자극적인 음색과 과격한 악센트, 그리고 과장된 음량 변화를 동반한 선율을 연주하며 거리의 악사로 변장한 무시무시한 저승사자의 캐릭터를 훌륭하게 묘사해내고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