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등장하는 모든 철학 언어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사항이지만, 로고스와 이데아라는 단어를 오늘날의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로고스는 원래의 말 뜻이 “말”(spoken words)이고, 이데아는 “본다”는 말에서 나온 “모습” 또는 “형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용어에 지금의 철학적 의미가 잔뜩 붙게 된 것은 2,500년 동안 생각이 쌓인 퇴적의 결과로 봐야 한다. 로고스라는 말도 그렇고, 이데아라는 말도 그렇고 우리는 지금 이 용어들을 골치 아픈 철학적 언어로 생각하지만, 원래는 일상 생활에서 쓰는 평범한 말들이었다. 플라톤은 이데아가 변화하는 세계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변화하는 세계에 있는 모든 존재는 변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상정한 이데아는 끝없이 변화하는 현실세계 저 너머에 있는 초월적 존재라고 봐야 한다. 시간과 공간의 질서에서 벗어나 있는 비시간적(atemporal)이며, 공간을 점유하지 않는 비공간적(aspatial) 존재다. 잠깐! 그런 존재를 믿어야 하는가? 보지도 듣지도 만질 수도 없다면, 그것이 있다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플라톤은 이데아는 육안으로는 볼 수 없다고 답한다. 그것은 우리 얼굴에 붙어있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있는 지성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여기서 지성이라는 말은 그리스어 ‘누스’(nous)를 번역한 것이다. 지성의 기능은 이데아의 세계를 보는 데 있다. 그것은 마치 얼굴에 있는 눈이 현상 세계를 보는 것을 기능으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