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는 천하의 객일 뿐, 백성이 주인이다”
먼저 황종희는 양명학의 종지를 따라 사람의 천품에는 태어날 때부터 차이가 있다는 주자학의 주장을 배격하고 “사람은 누구나 옳은 행동을 가릴 수 있는 양지(良知)를 가지며, 그런 점에서 근본적으로 평등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러므로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여긴 양명 좌파와는 달리, 공부와 수양을 통해 양지를 계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주자학과, “유학이 융성했던 송나라와 명나라가 왜 망했는가? 명분과 공리공론에만 얽매여, 진정 나라와 백성에 유익한 정책을 펴기를 게을리한 선비들의 잘못이 아닐까?”라는 문제의식에서 더 철저한 고전 분석을 통해 유학의 진면목을 밝혀내자고 한 고증학의 입장에 잇대어 있었다.
더 나아가, 그는 명나라가 망한 원인이 선비들에게만 있다고 보지 않았다. 만력제나 천계제를 생각해 보라. 복왕과 노왕은 또 어땠는가? 무능하고 우둔한 위인이 우연히 군주가 되어서는, 나라와 백성을 위해 노력은 하지 않고 스스로의 쾌락만 추구하다가 결국 나라를 망치지 않았던가? 이런 군주라면 차라리 없는 편이 낫지 않을까?
“인류 역사의 초기에는 누구나 자신의 뜻대로 살며, 자신의 이익만을 구했다. 공공의 이익이 있어도 돌아보는 사람이 없고, 공공의 해로움이 있어도 없애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나타나 자신만의 이익을 이익으로 여기지 않고, 천하의 이익을 추구했다. 또한 자신만의 손해를 손해로 여기지 않고, 천하의 해로움을 없애려 했다. (.....) 훗날의 군주는 그렇지 않다. 천하의 이해관계를 온통 자신의 손 안에 쥐고는 천하의 모든 이익을 자신의 이익으로 돌리고, 천하의 해로움은 그대로 천하에게 돌리고 있다. 천하의 백성이 자기 뜻대로 살지도 못하게 막으면서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모두의 공적인 이익이라 속여 그것을 추구하게 한다. (.....) 옛날에는 천하의 백성이 주인이었고 군주는 객(客)이어서, 군주는 평생 천하를 위해 수고했다. 이제는 군주가 주인이고 백성이 객이 되니, 백성은 평생 군주 때문에 편안할 수가 없다. (.....) 천하에 해로운 것이 바로 군주가 아니겠는가. 차라리 군주가 없다면, 누구나 자신의 뜻대로 살며, 자신의 이익이라도 챙길 수 있으리라.”
1663년에 나온 황종희의 대표작,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에 나오는 말이다. “명이(明夷)”란 주역의 한 괘로서 빛이 어둠 속으로 숨은 암담한 현실을 나타낸다. 황종희는 지금의 어지러운 세상을 개탄하면서 그 원인의 분석과 처방이 자신에게 있으니, “누군가 찾아와 그것을 활용해 주기를 대망한다(待訪)”는 뜻에서 이 책을 썼다. 그렇다면 처방이란 무엇인가? 그는 군주 세습제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 보았지만, 현실적으로 요순시대의 선양(禪讓) 제도로 돌이키기는 무리라 보았다. 그러나 재상제도는 반드시 되살려야 한다. 본래 군주와 신하는 함께 나라를 이끄는 파트너였는데, 명나라에서 재상제를 폐지하며 모든 신하는 군주의 노예처럼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재상이 이끄는 각료회의에서 정책을 결정해 군주의 결재를 받고 시행하도록 하며, 위충현처럼 황제의 총애를 업은 환관이 제멋대로 나라를 다스리지 않게 해야 한다. 또한 군주는 매월 대학(大學)을 방문하여 대학 좨주(祭酒)의 가르침을 듣는다. 그 가르침은 유교 경전의 풀이에 그치지 않고, 정책의 비판과 대안의 제시 등도 포함된다. 경연 제도는 본래 중국에서 나왔지만 명나라 때는 완전히 형식화되어 있었는데, 황종희는 조선에서처럼 군주가 학술토론과 정책토론에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주문한 것이다. 다른 점은 군주가 좨주를 스승으로서 존중하여, 그의 충고를 최대한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는 점이다.
황종희는 또 송나라와 명나라의 국방이 약해진 것이 송나라 때 지방 절도사를 폐지하고 군사력을 중앙에 집중시킨 데 있다고 보아 이를 되돌려야 한다고 했다. 그것은 일부 절도사의 힘을 키워 역성혁명이 일어날 소지를 높이겠지만, 그래서 어떻단 말인가? 한두 절도사의 야심조차 제압할 수 없는 왕조라면 없어지면 그만 아닌가? 그보다는 천하 만민이 외적의 침략으로 고통을 겪지 않게 방비하는 게 훨씬 중요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볼 때 황종희의 ‘변절’은 결코 변절이 아니다. 선비가 목숨을 걸고 충성해야 할 대상은 천하의 백성이지, 군주 개인이나 왕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명나라의 황제들이 본분을 잃고 천하를 해롭게 했다면, 새로운 왕조에 의해 교체되는 것이 옳다. 따라서 명왕조의 신하였던 자신은 청왕조에서 벼슬하지 않는 것이 예의지만, 목숨을 걸고 청나라에 끝까지 맞선다거나, 자식이나 제자들의 벼슬길까지 막는 일은 불필요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