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빈이라는 도시는 문화적 포용력과 다양성이 풍부한 도시였다. 당시 빈에서는 이탈리아 음악, 프랑스 음악, 독일 음악이 동시에 향유되고 있었다. 이런 문화적 다양성이 고전파 음악의 보편성과 범시대적 특성을 형성했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음악은 우연히 등장한 것이 아니었고, 독일어권의 음악적 유산만을 흡수한 것도 아니었다. 이들 음악의 등장은 세계주의적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18세기의 시대상과도 맞닿아 있었다. 고전파 음악의 완성을 본 것은 빈을 비롯한 독일이었지만 그 바탕에는 프랑스, 이탈리아의 음악이 있었다. 당시의 음악적 사정을 살펴보면 유럽의 여러 궁정에서 일하던 음악가들의 대부분은 이탈리아인이었다. 고전파 음악은 이탈리아를 비롯해 다양한 음악적 자양분을 흡수한 빈이라는 도시의 문화적 저력을 바탕으로 태어나게 된 것이다.
또한 당시에는 민족간의 차이에 대한 인식이 그리 크지 않았다. 외국 태생의 군주들이 각 나라를 다스렸다. 영국, 스웨덴, 폴란드에는 독일 출신 왕들이 있었고, 나폴리에는 스페인 출신 왕이, 투스카나에는 프랑스 공작이, 러시아 여제로는 독일 출신의 카타리나 2세가 재임했다.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는 프랑스어를 쓰는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대제 궁정에 머물렀고, 이탈리아 시인 메타스타지오는 빈의 독일 황제 궁에 있었다. 파리에서는 독일 출신의 교향곡 작곡가들이 활약했고 독일과 스페인, 영국, 러시아, 프랑스에서는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어머니로도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와 이 여왕을 모시던 하녀의 일기를 보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각종 언어가 등장한다고 한다. 이것을 보더라도 당시 빈에서는 유럽 각국의 문화가 풍요롭게 향유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젊은 음악가들은 빈이라는 도시가 주는 포용력과 다양성에 무한한 매력을 느끼고, 빈으로 모여들었던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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