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서클 중 하나로 피렌체에 있었던 것이 ‘카메라타’였다. 피렌체의 유복하고 교양있는 귀족, 철학자, 화가, 음악가, 시인들이 모인 동호회였다. 이들은 연극의 부흥과 새로운 음악의 창조를 함께 추구하고 있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고대 그리스의 키타라 반주 독창을 연구하고 모방했다. 이들이 연구한 그리스의 문헌에서는 말과 음악의 일치를 반복해서 역설하고 있었으며, 그것이야 말로 인간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여럿이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하나의 소리로 노래하는 가창 스타일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이런 스타일을 ‘모노디(모노디아)’라고 한다. 멜로디가 음악의 중심이 되고, 그것을 반주하는 하모니가 있고, 가사의 의미가 잘 전달되도록 작곡하는 것이 바로 이 모노디 스타일이다. 우리가 들어온 대중가요의 양식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단일’을 뜻하는 ‘monos'와 ’노래하다‘를 뜻하는 ’aidein' 등 그리스어에서 유래하는 말인데, 모노디 양식은 지배적이었던 다성음악에 종말을 알리고 클래식 음악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전 시대와 견주어 볼 때 단선율로 이루어진 독창 형식이 발달하면서 특히 오페라 분야에 큰 발전이 있었고, 이러한 특징이 나중에 고전주의 양식으로 이어지는 디딤돌이 되었다.
가장 오래된 오페라를 계승한 작곡가는 몬테베르디였다. 그의 [오르페오]는 1607년 만토바 공의 생일날 그의 궁정에서 무대에 올려 대성공을 거두었다 한다. 몬테베르디는 초기 오페라, 바로크 오페라의 작곡가로 기억될 만하다. [오르페오]를 비롯해서 [율리시즈의 귀환], [포페아의 대관] 등 그의 작품은 요즘도 심심찮게 무대에 오른다. 당시에 이들 작품이 무대에 오르던 오페라 극장은 베네치아에 있었다. 베네치아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으로도 알 수 있듯이 해상 수송의 거점으로 발달한 상업도시였다. 교황과 성직자, 그리고 왕후 귀족을 중심으로 하는 도시가 로마나 피렌체라면, 베네치아는 상인의 도시였던 것이다.
피렌체, 로마, 베네치아, 나폴리의 음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