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추천필독서 002. 연암집 > 전해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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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 서울대 추천필독서 002. 연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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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55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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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산문 가운데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을 엄선한 책이다. 박지원이 남긴 모든 시문을 수록하고 있는 박영철본 <연암집>을 대본으로 삼아 그의 산문을 중심으로 발췌했다. 창강 김택영이 ‘천 년의 역사 가운데 일찍이 존재한 적이 없던 바’라고 극찬했던 대문장가의 글을 생활 속에서 감상하기 쉽도록 엮었다.
 
박지원은 -
 
본관 반남(潘南), 자 중미(仲美), 호 연암(燕巖)이다. 돈령부지사(敦寧府知事)를 지낸 조부 슬하에서 자라다가 16세에 조부가 죽자 결혼, 처숙(妻叔) 이군문(李君文)에게 수학, 학문 전반을 연구하다가 30세부터 실학자 홍대용(洪大容)과 사귀고 서양의 신학문에 접하였다.

1777년(정조 1) 권신 홍국영(洪國榮)에 의해 벽파(僻派)로 몰려 신변의 위협을 느끼자, 황해도 금천(金川)의 연암협(燕巖峽)으로 이사, 독서에 전념하다가 1780년(정조 4) 친족형 박명원(朴明源)이 진하사 겸 사은사(進賀使兼謝恩使)가 되어 청나라에 갈 때 동행했다. 랴오둥[遼東]·러허[熱河]·베이징[北京] 등지를 지나는 동안 특히 이용후생(利用厚生)에 도움이 되는 청나라의 실제적인 생활과 기술을 눈여겨 보고 귀국, 기행문 《열하일기(熱河日記)》를 통하여 청나라의 문화를 소개하고 당시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방면에 걸쳐 비판과 개혁을 논하였다.
1786년 왕의 특명으로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이 되고 1789년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 이듬해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제릉령(齊陵令), 1791년(정조 15) 한성부판관을 거쳐 안의현감(安義縣監)을 역임한 뒤 사퇴했다가 1797년 면천군수(沔川郡守)가 되었다. 이듬해 왕명을 받아 농서(農書) 2권을 찬진(撰進)하고 1800년(순조 즉위) 양양부사(襄陽府使)에 승진, 이듬해 벼슬에서 물러났다.

당시 홍대용·박제가(朴齊家) 등과 함께 청나라의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이른바 북학파(北學派)의 영수로 이용후생의 실학을 강조하였으며, 특히 자유기발한 문체를 구사하여 여러 편의 한문소설(漢文小說)을 발표, 당시의 양반계층 타락상을 고발하고 근대사회를 예견하는 새로운 인간상을 창조함으로써 많은 파문과 영향을 끼쳤다.

이덕무(李德懋)·박제가·유득공(柳得恭)·이서구(李書九) 등이 그의 제자들이며 정경대부(正卿大夫)가 추증되었다. 저서에 《연암집(燕巖集)》 《과농소초(課農小抄)》, 《한민명전의(限民名田義)》 등이 있고, 작품에 《허생전(許生傳)》, 《호질(虎叱)》, 《마장전(馬駔傳)》,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 《민옹전(閔翁傳)》, 《양반전(兩班傳)》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