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답은 ‘나를 깨우려고’이다. 두 번째는 ‘전기적인 작동에 의해서 오늘 아침 7시에 울리도록 자명종을 맞춰 놓았기 때문에’이다. 첫 번째 답은 자명종이 울리게 된 목적을 말하고 있다. 이에 비해 두 번째 답은 목적이 아니라, 자명종의 작동 메커니즘을 언급하고 있다. 원자들의 움직임을 설명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원자들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고, 아니면 원자들의 작동 메커니즘, 혹은 자연 법칙을 제시할 수도 있다. 다른 말로, ‘무언가의 지배를 받는다’는 말을 ‘특정한 목적의 지배를 받는다’로 생각할 수도 있고, ‘자연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로 간주할 수도 있다. 이 두 가지 설명 중에서 원자론자들이 택한 것은 뒤에 것이다. 그들은 목적을 배제하고, 자연법칙을 통한 기계론적인 설명을 도입한다.
그리스 원자론자들은 이런 원자의 움직임을 키질에 비유한다. 곡식을 키에 놓고 위로 던졌다 받으면서 껍질은 날려 보내고 낟알만 키에 남겨 놓는 작업과 비슷하게, 원자들은 계속 움직이면서 비슷한 것끼리 모이게 된다. 이런 설명에는 분명 목적이 배제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고대 그리스 원자론자들의 목적 없는 기계론은 그 후 철학사의 주류를 형성하지 못한다. 목적을 제거해 버린 원자론자들의 생각은 조화로운 목적들의 세계를 상정한 플라톤에 의해서 철저하게 무시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