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추천필독서 014. 백석시선집 > 전해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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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 서울대 추천필독서 014. 백석시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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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62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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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초판본 백석 시선.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이 땅에 왔다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타고 멀리 떠나간 시인이 있다. 평북의 명문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도쿄로 유학, 아오야마학원에서 영어사범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 조선일보 출판부에서 저널리스트로 일하는가 하면 미션 스쿨에서 영어를 가르친 초 엘리트.



그러나 그가 택한 길은 서구주의도, 모더니즘도 아니었다. 그 누구보다도 토속적이고 소박한 '우리'말로 '우리'의 이야기를 읊은 백석. 구수한 할머니 이야기 같은 그리운 기억을 일깨우는 그의 시를 초판본 표기 그대로 만나 본다.
[알라딘 제공]
 
 
저자소개
백석
저자 : 백석
저자 백석(白石, 1912∼1996)은 1912년 7월 1일(음력 추정) 평북 정주군 갈산면 익성동 1013호에서 부친 백시박(白時璞)과 모친 이봉우(李鳳宇)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난 시인 백석(白石)의 외모는 한눈에도 두드러진다.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사진을 봐도 그의 모습은 매우 모던하다. 서구적 외모에 곱슬곱슬한 고수머리. 빛바랜 흑백사진을 보면 그의 머리 모양은 참 특이하다. 1930년대에 그런 머리를 할 수 있는 감각이란 얼마나 현대적인가? 옛사람이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는 시쳇말로 외모와 문학을 새롭게 디자인한 모던 보이이자 우리말의 감각을 최대치로 보여 준 시인이다. 본명은 기행(夔行)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연(基衍)으로도 불렸다. 필명은 백석(白石, 白奭)인데 주로 백석(白石)으로 활동했다. 191.8년(7세), 백석은 오산소학교에 입학했다. 동문들의 회고에 따르면 재학 시절 오산학교의 선배 시인인 김소월을 매우 선망했고, 문학과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1929년 오산 고등보통학교(오산학교의 바뀐 이름)를 졸업하고 1930년 ≪조선일보≫의 작품 공모에 단편 소설 〈그 모(母)와 아들〉을 응모, 당선되어 소설가로서 문단에 데뷔한다. 이해 3월에 조선일보사 후원 장학생 선발에 뽑혀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靑山)학원 영어사범과에 입학해 영문학을 전공한다. 1934년 아오야마학원을 졸업한 뒤 귀국해 조선일보사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경성 생활을 시작한다. 출판부 일을 보면서 계열잡지인 ≪여성(女性)≫의 편집을 맡았고 ≪조선일보≫ 지면에 외국 문학 작품과 논문을 번역해서 싣기도 했다. 1935년 8월 30일 시 〈정주성(定州城)〉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면서 시인으로서의 창작 활동을 시작하는 한편 잡지 ≪조광(朝光)≫ 편집부에서 일한다. 1936년 1월 20일 시집 ≪사슴≫을 선광인쇄주식회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발간한다. 1월29일 서울 태서관(太西館)에서 열린 출판기념회 발기인은 안석영, 함대훈, 홍기문, 김규택, 이원조, 이갑섭, 문동표, 김해균, 신현중, 허준, 김기림 등 11인이었다. 1936년 4월, 조선일보사를 사직하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고보의 영어 교사로 옮겨 간다. 1940년 1월 백석은 친구 허준과 정현웅에게 “만주라는 넓은 벌판에 가 시 백 편을 가지고 오리라”라는 다짐을 하고 만주로 향한다. 1940년도에 들어와 백석은 한국 현대시 최고의 명편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서의 자리를 굳힌다. 시적 반경도 역사적·지리적·정신적으로 대단히 깊고 넓어지기 시작한다. 그 1945년 해방과 더불어 귀국해 신의주에서 잠시 거주하다 고향 정주로 돌아가 남의 집 과수원에서 일한다. 1946년 고당 조만식 선생의 요청으로 평양으로 나와 고당 선생의 통역 비서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8년 김일성대학에서 영어와 러시아어를 강의했다고 전해진다. 그해 10월 ≪학풍≫ 창간호에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을 발표한 것을 끝으로 남한 정부가 월북 문인 해금 조치를 취한 1988년까지 그의 모든 문학적 성과와 활동이 완전히 매몰되고 만다. 한국전쟁 직후 백석은 평양 동대원 구역에 거주하면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외국 문학 번역 창작실’에 소속되어 러시아 소설과 시 등의 번역과 창작에 몰두한다. 1962년 10월 북한의 문화계 전반에 내려진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과 연관되어 일체의 창작 활동을 중단한다. 1996년 1월 7일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저자 : 정철훈 (엮음)
엮은이 정철훈(鄭喆熏)은 1959년 전남 광주에서 나서 서울에서 자랐다. 국민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러시아 외무성 외교아카데미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러시아국가자격최고위원회에서 〈10월 혁명 시기 극동 러시아에서의 한민족 해방 운동(1917∼1919)〉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 계간 ≪창작과비평≫에 〈백야〉 등 6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국민일보 문학 전문 기자로 재직하고 있으며 국제한인문학회 부회장, 경희사이버대학 초빙 교수로 있다. 시집 ≪살고 있는 아침≫(2000), ≪내 졸음에도 사랑은 떠도느냐≫(2002), ≪개 같은 신념≫(2004), ≪뻬쩨르부르그로 가는 마지막 열차≫(2010), 장편소설 ≪인간의 악보≫(2006), ≪카인의 정원≫(2008), ≪소설 김알렉산드라≫(2009), 러시아 체류기 ≪소련은 살아 있다≫(1995), 전기 ≪김알렉산드라 평전≫(1996), 러시아 사회평론집 ≪옐찐과 21세기 러시아≫(1997), 문학평론집 ≪뒤집어져야 문학이다≫(2009)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