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네트 148 - 셰익스피어 > 전해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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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문학 소네트 148 - 셰익스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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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43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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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네트 148 SONNET 148윌리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아, 사랑이 내 머리에 어떤 눈을 심었기에
내 눈이 헛것을 본단 말인가?
아니, 제대로 본들, 내 판단력은 어디로 달아났기에
잘 본 것들마저 잘못 판단한단 말인가?
내 잘못된 눈은 무작정 빠져드는 것마다 아름답거늘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고 함은 어인 일인가?
실제로 아름답지 않다면, 사랑이 아름답게 보는 것이리라
사랑의 눈은 세상 사람들 눈만큼 정확치 않다, 아니다,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아, 지새움과 눈물로
그처럼 흐려진 사랑의 눈이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그러니 내 눈이 헛것을 본들, 그러니 놀라울 것 없어라,
하늘이 맑아야 태양이 스스로를 비추는 법이기에.
아 영리한 사랑이여! 그대는 눈물로 나를 눈멀게 했구나,
잘 보는 눈이 그대 추한 결함들을 찾아내지 못하도록.
O me, what eyes hath Love put in my head,
Which have no correspondence with true sight!
Or, if they have, where is my judgment fled,
That censures falsely what they see aright?
If that be fair whereon my false eyes dote,
What means the world to say it is not so?
If it be not, then love doth well denote
Love's eye is not so true as all men's : no,
How can it? O, how can Love's eye be true,
That is so vex'd with watching and with tears?
No marvel then, though I mistake my view;
The sun itself sees not till heaven clears.
O cunning Love! with tears thou keep'st me blind,
Lest eyes well-seeing thy foul faults should find.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시인’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던 건 영화 ‘내 남자친구는 왕자님’에서였다. 그랬다! ‘비너스와 아도니스’와 ‘루크리스(Lucrece)의 능욕’은 셰익스피어가 쓴 아름다운 장시(長詩)였고, 셰익스피어에겐 무엇보다 해럴드 블룸에 의해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을 완벽하게 발휘한 작품”으로 상찬되었던 154편의 소네트들이 있었다. 영화에서는 시적 감수성이라곤 젬병인 여자 친구에게 우리의 왕자님이 시에 대해 ‘한 수’ 가르쳐 준다. 셰익스피어 ‘소네트 148번’ 12행, “태양은 보이지 않는다 천국이 빛나기 전까지”(The sun itself sees not till heaven clears, 하늘이 맑아야 태양이 스스로를 비추는 법이기에)이다. 왕자님은 이 구절을 ‘구름이 낄 때는 태양이 빛나지 않는다’라는 직설적 표현으로 전환한 후 ‘사랑이 너를 눈멀게 했다’와 ‘네가 사랑에 빠지면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라는 시적 의미를 유도해 낸다. 세탁실에서 만난 두 남녀는 셰익스피어 소네트 한 구절에 교감하면서 사랑의 마법에 말려들기 시작한다.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은 소문처럼 무성하다.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영향력 있는 극작가’,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는 영국인들의 자존심’ 등의 수식이 붙곤 하는 그 이름은 때로 텅 빈 기호 혹은 채워질 수 없는 욕망과도 같다. 이를테면 이런 것! 셰익스피어 희곡 원작을 죄다 읽어 보기, 언어의 연금술사처럼 무대 위의 배우처럼 그 멋진 문장들을 외워 보기와 같은 것! 누구나 셰익스피어를 알지만 누구도 셰익스피어를 다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 “그는 한 시대의 사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사람이었다!”라는 17세기 극작가 벤 존슨이 바친 헌사의 의미 같은 것!
실제로 셰익스피어의 삶과 작품 연대기는 수수께끼에 가깝다. 심지어는 셰익스피어라는 사람은 실존하지 않았으며, 누군가의 필명이거나 집단 저작일 수도 있다는 음모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1564년 4월 23일에 태어났으며 우연의 일치처럼 1616년 4월 23일에 눈을 감았고, 그가 세례를 받았던 홀리 트리니티 교회에 잠든 것으로 공인되어 왔다. ‘딱 52년’을 살았을 뿐인데 무려 500년을 아니 오래된 미래의 ‘위대한 전설’로 살아남은 것이다. 그가 묻힌 교회 무덤에는 이런 문장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선한 친구여, 제발 부탁이니/ 여기 묻힌 흙을 파내지 마오./ 이 돌들을 그대로 두는 자에게 복이 있고/ 내 유골을 움직이는 자에게 저주 있으리.” 햄릿, 아니 맥베스나 리어왕, 아니아니 오셀로에게 어울릴 것 같은 비문이다.
셰익스피어 소네트들은 1600년을 전후해서 썼을 것으로 추측될 뿐, 정확히 언제 쓴 것인지 누구에게 또는 어떤 독자를 대상으로 쓴 것인지 불분명하다. ‘W. H.'라는 인물, 귀족 청년, 검은 여인 등에게 바친 내밀한 사랑의 기록이자, 비유와 기지로 무장한 감각의 성찬으로 평가되고 있다. 소네트란 ‘작은 노래’ 즉 소곡(小曲)을 뜻한다. 셰익스피어는 찬미 일색, 통속적 연애시 일색의 기존 소네트 전통에서 벗어나 미라든가 진리, 사랑, 시간, 예술, 영혼 등으로 그 주제를 확대했다. 특히 역설을 강조하면서 두 행씩 각운(end rhyme)을 이루며 4행씩 세 부분으로 전개되다 마지막 두 행(couplet)에서 압축 혹은 반전되는 영국식(셰익스피어식) 소네트 형식을 확립하기도 했다. “셰익스피어는 천 개의 마음을 지닌 사람이다. 그는 수도관 속을 흐르는 물 같은 존재다.”라고 했던 이는 19세기의 새뮤얼 콜리지였던바, ‘천 개의 마음’으로 상징되는 사랑에 대해 셰익스피어 소네트만큼 깊은 통찰력을 보여 주는 시편들도 드물다. 특히 눈먼 사랑, 맹목적인 사랑에 대한 통찰이야말로 셰익스피어 소네트의 정수다. 우리의 로미오도 이렇게 말했다. “아, 그 사랑은 눈이 가려져 있다고 하지만/ 눈이 없어도 자기가 갈 길을 찾아내지.”(‘로미오와 줄리엣’)라고.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609년 판 표지 <출처:Wikipedia>
1870년 유화. Ford Madox Brown이 그린 로미오와 줄리엣의 발코니 장면 <출처:Wikipedia>

‘소네트 148’에서도 ‘사랑의 눈(Love's eye)’은 헛것을 본다. 이 사랑의 신(神)의 눈은 ‘정확한 시각(true sight)’이나 ‘판단력(judgment)’과는 거리가 멀다. 눈은 진리를 보아야 하고 사실을 말해야 하지만, 사랑에 빠진 눈은 사랑하는 사람의 아름다움에만 무작정 빠져든다. 모든 사람들이 지닌 정확하고 객관적인 눈과는 상극이다. 지새움과 눈물이 눈멀게 했기 때문이다.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제 눈의 안경이라는 말도 그렇다. 우리의 테세우스 또한 이렇게 일갈했다. “미친 사람과 사랑에 빠진 사람, 그리고 시인은 모두가 다 상상으로 꽉 찬 사람들이지.”(‘한여름 밤의 꿈’)라고. “끝없는 불안으로 광기에 사로잡히니,/ 내 생각과 내 말이 미친 사람의 것 같고,/ 진심에서 나온 말도 헛소리에 두서가 없구나./ 내 그대가 아름답다 맹세하며, 그대가 눈부시다 생각하니/ 그대는 지옥처럼 검고 밤처럼 어둡구나.”(‘소네트 147번’)는 눈먼 사랑의 또 다른 변주다.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썼다. “사랑은 누구든 눈멀고 귀먹게 하는 마취제”이고 “사랑은 누구라도 우습고 허튼 상상의 감옥으로 인도하는 안내자”(‘오셀로’)라고. 그러니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사랑에 빠진 인간이니라, 사랑이 피어날 때도 사랑이 질 때도 귀먹고 눈멀 것이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 스스로를 향해서는 이렇게 썼다. “시인의 잉크가 사랑의 한숨에 단련되기 전까지는/ 시인이 감히 글을 쓰려 펜을 만지지도 못하게 하라”(‘한여름 밤의 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