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 - 도덕철학자 > 전해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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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 - 도덕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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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44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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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가 쓴 [국부의 성격과 요인들에 관한 연구(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에서 근대 경제학이 출범하기 때문이다. 보통 [국부론]으로 줄여서 불리는 이 기념비적 저작은 1776년 출판된 이후 지금까지 경제학의 교과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때문일까? 경제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그의 이름은 당대의 뛰어난 경제학자들보다 더 자주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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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작 [국부론]에 경제학이라는 용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시장의 자기 통제를 강조한 표현인 ‘보이지 않는 손2049587376_zNCZJiWd_txt_number1.gif(invisible hand)’이라는 유명한 말도 단 한 차례 나올 뿐이다. 스미스 자신도 그를 경제학자라고 부른 적이 없다. 그는 자신을 ‘도덕 철학자’(moral philosopher)라고 생각했다. 그가 [국부론]에서 다루고 있는 “한 나라의 부는 어떠한 질서 또는 원리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는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 질문도 그가 평생을 두고 연구한 도덕철학이라는 틀 안에서 조망했을 따름이다.
에든버러(Edinburgh)에 있는 그의 무덤에 새겨진 짤막한 비문이 이 점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도덕 감정론]과 [국부론]의 저자인 애덤 스미스가 여기에 잠들다.” 도덕철학을 다룬 [도덕감정론]이 그 유명한 [국부론]보다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도대체 그가 주장한 도덕철학이 무엇이기에?
스미스가 말하는 도덕철학을 폭넓게 해석해 줄 것을 나는 요청한다. 오늘의 학문 분류에서 도덕철학은 윤리학과 비슷한 뜻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스미스가 살았던 18세기 영국에서 도덕철학은 자연철학(natural philosophy)과 대칭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눈 여겨 살펴봐야 한다. 자연철학이 자연의 원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라면, 도덕철학은 인간 사회의 원리를 탐구하는 학문하는 학문을 통칭하는 이름이었다. 그렇다면 도덕철학은 오늘의 용어로 풀면 사회철학이라고 보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한 가지 점만 더 짚고 넘어가자. 18세기 영국인들은 도덕철학과 자연철학의 연구방법이 동일하다고 믿었다. 그들은 인간의 본성(human nature)을 자연처럼 관찰했다. 뉴턴이 자연의 원리를 관찰을 통해 성공적으로 밝혀낸 것처럼 인간에 있는 자연(인간 본성)의 원리를 관찰을 통해 밝혀낼 수 있다고 그들은 믿었다. 이것은 영국 경험론 일반에 나타나는 경향이지만, 스코틀랜드 계몽주의2049587376_VHwQYqBU_txt_number2.gif(Scottish Enlightenm ent)의 두드러진 특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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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도덕철학자로 여겼던 애덤 스미스.
<출처: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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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는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까지 글래스고(Glasgow) 대학에서 12년 동안 도덕철학을 강의했다. 그는 이 시절을 가장 소중했고 행복했으며 영예로운 시기라고 회고한 바 있다. 스미스의 도덕철학 강의를 들었던 한 학생의 기록에 따르면, 그의 도덕 철학은 크게 네 부문으로 나뉜다. 자연신학(natural theology)과 윤리학, 법학, 그리고 정치경제학이다.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학문들이 도덕철학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여진 셈이다. 신학에서 정치경제학까지. 굳이 요즘 말로 표현한다면 학제간(interdisciplinary) 연구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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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의 대표작 [국부론]. <출처: wikipedia>

우리는 그 당시 개별 학문들이 각각의 독립적 체계를 갖춘 분화 이전의 단계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스미스는 인간사회의 경제 원리에만 관심을 가진 좁은 의미의 경제학자가 아니다. 그는 근대 사회의 구성 원리를 세우고자 한 사회철학자의 얼굴도 함께 지니고 있다. 그가 밝혀낸 경제 원리가 오늘까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은 그의 사상이 도덕철학의 원리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점에 대해서는 20세기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의 스미스에 대한 평가가 하나의 단서를 제공한다. 슘페터는 스미스가 쓴 [국부론]이 매우 중요한 저작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거기에는 새로운 생각이나 원리, 또는 방법이 하나도 없다고 지적한다. 스미스는 단지 그 이전의 사상가, 스콜라철학에서 자연법철학자, 그리고 중농주의자와 중상주의자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원천에서 나온 방대한 자료들을 몇 개의 유기적 원리에 따라 구슬을 꿰어 하나의 체계로 만들었을 뿐이라고 분석한다. 슘페터는 [국부론]의 성공 요인에 대해 이런 말도 했다. 스미스의 분석은 깊지 못했기 때문에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웠고, 스미스의 주장은 모호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해서 역설적으로 많은 추종자를 거느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뒤집어서 말하면, 바로 이 점이 영국의 경험주의적 전통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무릎을 치게 하는 심오한 분석보다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상식에 바탕을 둔 주장, 한 순간에 번개처럼 머리를 치는 천재적 영감을 붙잡아 단숨에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두고 생각을 숙성시키면서 책을 쓰는 것이 영국 경험론자의 특징이다. [국부론]은 스미스의 생전에만 5번의 개정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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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도덕 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도 그렇다. 이 책은 인간 본성 또는 도덕 감정에 대해 집요하게 추적해온 스코틀랜드 계몽시대의 도덕철학자들의 성찰을 토대로 한다. 슘페터 식 어법으로 좀 용감하게 말하면, 전체의 틀은 스미스의 스승인 프랜시스 허치슨(Francis Hutcheson: 1694-1746)에서 가져왔고, [도덕감정론]의 핵심 개념인 ‘공감(sympathy)’의 원리는 그의 친구인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의 용어를 빌려왔다. 인간의 이기심(self-interest)이 공감의 원리와 충돌하지 않고, 오히려 사회구성의 원리로 작동하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unintended consequence)’를 가져온다는 결론은 어떤 점에서는 그가 평생을 두고 비판해온 버나드 맨더빌(Bernard Mandeville: 1670-1733)의 “개개인의 부도덕이 공공선을 만든다”는 주장과 역설적으로 일치한다. 스미스는 그보다 앞선 도덕철학자들의 주장을 잘 갈고 닦아 하나의 실에 꿰어 가장 빛나는 구슬로 만든 셈이다.
스미스의 도덕철학은 글래스고 대학 시절의 스승인 프랜시스 허치슨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스미스는 학생시절에 허치슨으로부터 도덕철학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후에 모교에서 허치슨의 자리를 이어 받아 도덕철학을 가르쳤다. 스미스는 허치슨으로부터 인간에 내재하는 도덕 감각(moral sense)에서 사회질서의 원리를 구하고자 하는 스코틀랜드의 학문적 전통과 도덕 감각이 인간의 선천적 능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경험론적 전통도 물려받았다.
허치슨은 도덕 감각을 철저하게 경험론적 시각에서 설명했다. 인간에게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보는 감각이 있는 것처럼, 인간에게는 또한 아름답고 추한 것을 느끼는 감각(미 감각)과 좋고 나쁜 것을 느끼는 감각(도덕 감각)이 있다고 상정했다. 그는 이런 비유도 했다. 뜨거운 불에 화상을 입은 사람이 경험적으로 불을 멀리하는 것처럼, 사람은 경험적으로 자신에게 좋거나 아름다운 것에 가까이 하고 나쁘거나 추한 것을 멀리한다. 인간은 자신의 행위를 자기애(self-love) 또는 자기이익(self-interest)에 의해서 선(good)이라고 승인하거나 거부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도덕의 원천이다. 그는 도덕 판단이 이성이 아니라 도덕 감각의 산물이라고 주장한 인물이다. 이러한 허치슨의 주장은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두 주역 데이비드 흄(David Hume)과 애덤 스미스에게 각각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더 나아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the greatest happiness for the greatest numbers)’을 원리로 하는 영국 공리주의의 씨앗을 뿌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남는다. 개개인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좋고 나쁘다는 판단을 내리는 최종 판관이 된다면, 공공의 이익 또는 공공선(commonly good)은 어떻게 보장되는가? 이에 대해 허치슨은 인간은 상호승인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과정에서 공공의 이익에 기여한다고 응답한다. 이 대목에서 허치슨은 이타심 또는 자선(benevolence)이라는 오래된 개념을 소환한다. 그는 자선을 적극적으로 해석한다. 자선은 타인의 이익을 우선하는 이타적 행위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해를 끼치는 않는 한도에서 사익을 추구하는 것도 자선이라는 것이다. 허치슨은 자선을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덕이라고 생각했으며, 공공의 이익으로 향하는 자선의 원리는 마치 중력의 원리와 같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흄과 스미스는 이 대목에서 이의를 제기한다. 흄은 도덕이 이성의 산물이 아니라 감정의 산물이라는 허치슨의 주장에는 동의한다. 쾌락 또는 고통의 감정이 선과 악을 구분하는 일정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도 역시 동의한다. 그러나 흄은 자선을 바탕으로 한 개개인의 상호승인이 사회질서를 유지한다는 허치슨의 견해와는 달리,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자연적인 도덕적 승인이 아니라 인위적인 정의(justice)라고 주장했다. 인간이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적 성향이지만, 개인의 충돌을 조정해서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공동 이익에 대한 일반 감각(general sense of common interest)’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공동 이익에 기초한 정의의 규칙이며, 이러한 정의의 규칙이 작동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공감(sympathy)’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허치슨도 공감의 기능을 주장하기는 했다. 그러나 허치슨이 말하는 공감이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흄이 말하는 공감은 공동의 이익에 대한 ‘효용(utility)’에 대한 판단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앞에서 우리는 허치슨의 도덕감각 이론이 공리주의로 이어진다고 했는데, 허치슨과 공리주의를 제창한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 사이에는 사상사적으로 흄이 제기한 효용 개념이 매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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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는 공감의 개념을 흄과는 또 다르게 해석한다. 그는 공감의 원칙을 흄과 같이 효용을 매개로 하지 않고 ‘적정성(propriety)’을 매개로 주장한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덕을 효용에 있다고 보는 체계는 덕이 적정성에 있다고 보는 체계와 서로 일치한다”고 인정하면서도, “덕은 한 가지 감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감정의 적절한 정도에 있다”고 흄의 효용론을 넌지시 비판한다. 스미스가 제기한 공감의 원칙에서 중요한 것은 공정한 ‘관찰자(spectator)’의 역할이다. 이 관찰자는 행위자와는 직접적 관련이 없는 제3자이지만,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의 첫 대목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이라고 가정해도 인간의 본성에는 이와 상반되는 몇 가지 요소가 분명히 존재한다. 바로 이 때문에 인간은 바라보는 즐거움 이외에는 자신이 얻는 것이 없다고 해도 타인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고 타인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공감은 우리가 모든 감정에 대해서 ‘동료로서 가지는 느낌(fellow-feeling)’을 가리킨다. 인간이 가지는 공감은 본능적이며, 모든 이익에 대한 판단에 선행한다. 여기서 스미스가 말하는 공감의 원칙은 이중적이다. 하나는 관찰자가 타자의 행위가 적정한 것인가, 곧 타자의 행위와 감정이 그것을 자극한 원인 또는 상황에 비추어 과도한지 또는 적절한 것인지를 관찰한다. 또 그 행위가 이로운 결과를 낳는지, 또는 해로운 결과를 낳는지도 아울러 관찰한다. 다른 하나는 관찰자가 타인의 행위에 대한 관찰자로서의 판단을 자신의 행위를 관찰하거나 판단할 때도 적용된다는 점이다. 스미스는 이 관찰자를 ‘가상의 공정한 관찰자(supposed impartial spectator)’, 또는 ‘가슴 속에 있는 이상적 인간(ideal man within breast)’라고 부른다.
이 공정한 관찰자의 존재가 바로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힘이다. 공정한 관찰자는 사회 구성원의 승인과 거부의 표현에 따라서 구성원 간에 동의할 수 있는 규칙을 만들어간다. 이 과정을 통해서 한 사회에 정의의 규칙이 형성될 수 있다. 그래서 인간사회는 서로의 사랑이 없어도 서로 합의된 가치평가에 따른 금전적 교환만으로도 사회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스미스는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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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의 무덤(Canongate Kirkyard, Edinburgh). <출처: wikipedia>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에서 주장한 공감의 원리는 [국부론]에서 시장의 원리로 확장된다. 공감의 원리와 시장의 원리는 스미스의 철학체계에서 모두 인간의 본성에 연유한다. 스미스는 인간을 천상에 있는 존재처럼 파악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인간에 대해 절망하지도 않았다. 그는 인간의 속성을 마치 자연의 속성을 관찰하듯 바라봤을 뿐이다. 그리고 그 관찰을 토대로 인간사회의 구성원리에 대한 탁월한 그림을 그렸다. 어떤 점에서 우리는 스미스가 2백여 년 전에 그린 세계의 그림 속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우리 모두는 지금 시장경제 체제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경제가 요동칠 때마다 그의 책을 다시 펼쳐보는 것이 아닐까.

  1.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
    시장이 정부나 그 밖의 기관 없이도 스스로 자기 통제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비유적으로 가리킨다. 영국의 도덕철학자이며 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가 <도덕감정론>(1759)과 《국부론》(1776)에서 비유적으로 사용하면서 유명해진 말이다. 도덕철학적 의미로는 개인의 사익에 기초한 행위가 궁극적으로는 사회 공동의 이익으로 조화를 이룬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경제학적 의미로는 개인의 이기심에 바탕을 둔 경제행위가 결과적으로 경제 발전 및 수급의 균형을 맞춘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2. 스코틀랜드 계몽주의(Scottish Enlightenment)
    18세기 스코틀랜드에 나타난 일련의 사상적 흐름을 가리키는 말이다.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아버지로 평가되는 철학자 프랜시스 허치슨, 근대 경험주의 철학의 완성자 데이비드 흄, 근대 경제학의 창시자 애덤 스미스, 시민사회 이론의 선구자 애덤 퍼거슨, 자연사와 지질학을 개척한 제임스 허튼 등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 이들은 긴밀한 교우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 지적 자극을 주고 받으며 에든버러와 글래스고를 중심으로 지성의 꽃을 피웠다. 1708년 잉글랜드와 합병한 스코틀랜드의 정치적 분위기 때문인지 새로운 근대 시민사회의 원리에 대한 관심이 많았으며, 경험주의적 성향이 매우 짙게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