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곡 - 오케스트라 교실 > 전해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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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곡 - 오케스트라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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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35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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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상 혁신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킨 2곡의 관현악곡이 모두 ‘전주곡’이란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신비로운 ‘트리스탄 화음’으로 20세기 무조음악을 예고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과, 모호한 화음과 신비로운 관현악 색채를 만들어낸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은 모두 ‘전주곡’이라 불립니다. 본래 ‘전주곡’이란 음악이 본격적인 음악작품이 전개되기 전 ‘도입’ 역할을 하는 짧은 곡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감안해보면 역사적으로 중요한 두 작품이 전주곡이란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됩니다. 하지만 ‘전주곡’은 음악작품의 ‘도입’인 동시에 작품 전체를 대변하는 ‘첫인상’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음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품의 첫인상인 전주곡 속에는 다음에 따라 나올 음악의 핵심적 요소가 녹아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시대에 따라 달라진 전주곡의 의미와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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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곡’(prelude)은 시대에 따라 그 의미도 다르고 기능이 달랐습니다. 같은 ‘전주곡’이라 할지라도 그 기능이 다를 수도 있기 때문에, ‘전주곡’이란 음악을 명확하게 정의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과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의 경우, 두 곡 모두 ‘전주곡’이라 불리기는 하지만, 바그너의 작품이 음악극이 전개되기 전에 연주되는 전주곡인 반면 드뷔시의 작품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관현악곡입니다.
오페라의 전주곡을 제외하면 대개 ‘전주곡’이라 불리는 음악은 독주 악기를 위한 작품입니다. 본래 이 음악은 독주자 ‘워밍업’을 위한 연습곡이나 다름없습니다. 전주곡이란 음악은 연주자가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악기의 음정은 잘 맞는지 소리는 잘 나는지 점검도 해보고 손가락을 풀기 위해 악기 소리를 내보는 것에서 유래됐으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전주곡에선 마치 어린 시절 피아노 배울 때 지겹게 연습하던 음계나 일정한 패턴의 선율이 반복해서 들려오는 일이 많습니다. 빠른 악구와 분산화음, 장식음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나서 마치 재미없는 연습곡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상용으로도 듣기 좋은 전주곡들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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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전주곡은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도입역할을 하는 음악이다. <출처: NGD>
 
바흐가 활동하던 18세기까지만 해도 ‘전주곡’은 여러 춤곡으로 구성된 독주 모음곡의 서두를 여는 음악이었지만, 19세기가 되면 새로운 형태의 전주곡을 인기를 끌게 됩니다. 훔멜과 쇼팽은 이 시대에 전주곡에 새로운 성격을 부여한 음악가였습니다. 그들이 선보인 전주곡은 더 이상 다른 음악을 위한 전주가 아니라 독립된 독주곡입니다.
여러 개의 전주곡을 묶어서 하나의 세트로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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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은 전주곡만 24곡을 묶어서 하나의 세트로 작곡을 했습니다. 말하자면 이 작품에는 24개의 짧은 전주곡만 있고 다른 곡들이 전혀 없는 조금 특이한 구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본래 전주곡은 본격적인 연주에 앞서서 간단하게 워밍업을 하는 곡이지만 쇼팽은 전주곡에 대한 그런 고정관념을 바꿔서 전주곡을 하나의 독자적인 예술음악으로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쇼팽의 전주곡 24곡은 비록 길이는 짧지만 하나하나가 아주 독창적이고 성격이 뚜렷합니다.
 
쇼팽의 이 전주곡에는 한곡 한곡마다 재미난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전주곡 10번에는 ‘하데스’, 죽음의 신의 이름이 붙어 있지요. 쇼팽의 24곡의 전주곡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곡은 아마도 ‘빗방울 전주곡’일 겁니다. 이 곡은 24곡의 전주곡 가운데서 15번에 해당합니다. 쇼팽이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에 영감을 받아서 작곡했기 때문에 이런 제목이 붙었지요. 이 곡을 작곡할 당시에 쇼팽은 건강이 좋지 않아서 지중해의 어느 섬에서 요양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창밖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피아노로 이 전주곡에 담아서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고 합니다. 쇼팽은 ‘피아노의 시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피아노라는 악기로 시적인 감수성을 표현해낸 음악가로 알려져 있는 만큼, 그가 작곡한 전주곡에서도 피아노의 시인으로서의 면모를 느낄 수 있습니다.
각 작품마다 고유의 숨결이 느껴지는 쇼팽의 전주곡 24곡은 하나의 ‘음악장르’라기보다는 하나의 ‘음악적 영감’으로 승화된 듯합니다. 쇼팽의 예술적 전주곡은 드뷔시의 [전주곡]으로 계승되었습니다. 드뷔시의 전주곡들은 하나의 묶음으로 된 ‘전집’이라기보다는 그 하나하나가 고유의 아름다움을 지닌 작품들의 모음과도 같습니다. 1910년에 출판된 전주곡집 제1권과 1913년에 출판된 제2권은 각각 12곡의 개성적인 전주곡들로 구성되었습니다. 드뷔시는 각각의 전주곡에 자연이나 상황, 사람들을 나타내는 제목을 붙여 각 작품 고유의 아름다움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냈습니다.

드뷔시의 전주곡집 제1권의 8번에 드뷔시는 “매우 조용하고 다정한 표정으로” 연주하라고 써놓았습니다. 이 음악의 감미로운 선율을 들으면 드뷔시가 그렇게 써놓은 까닭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드뷔시는 이 어여쁜 전주곡을 ‘아마빛 머리의 소녀’에게 바쳤습니다. 여름의 태양을 받으며 종달새와 함께 사랑을 노래하는 앵두 같은 입술의 미소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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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적 완성도를 가진 짧은 전주곡을 묶어 하나의 세트를 만들기도 한다.
<출처: NGD>
주로 독주곡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전주곡’이란 음악은 19세기 오페라 작곡가들에 의해 관현악곡으로 거듭 났습니다. 서곡보다 간결하고 오페라의 극적인 분위기를 암시하며 관객들을 곧바로 극 자체로 끌어들이는 전주곡은 오페라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지니며 오페라의 핵심적인 주제들을 제시합니다.
음악극 전체의 핵심을 모두 담아낸 전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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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의 음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전주곡 초반에 울려 퍼지는 ‘트리스탄 화음’의 마법과 같은 음향은 극 중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마시는 사랑의 묘약의 약기운만큼이나 묘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전주곡만으로도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안타까운 사랑이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서로 사랑해서는 안 될 사이였습니다. 콘월의 기사 트리스탄은 아일랜드 기사이자 이졸데의 약혼자인 모롤트를 죽였으니 이졸데에게는 철천지원수인 셈이지요. 하지만 두 사람은 어쩔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서로에게 강하게 끌입니다. 그것도 콘월의 마르케왕과 아일랜드의 이졸데 공주의 정략결혼을 위해 떠나는 배 안에서 사랑에 빠집니다.

 

 
배가 도착하면 곧 마르케 왕과 결혼해야할 이졸데와, 이졸데를 마르케 왕에게 인도해야하는 트리스탄. 두 사람은 이 위험한 사랑 앞에 어찌할 바를 몰라, 마침내 배가 콘월에 도착하기 전 독약을 마시고 죽음을 택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마신 것은 독약이 아니라 사랑의 묘약이었습니다. 그들의 죽음을 두고 볼 수 없었던 하녀가 독약 대신 놓아둔 사랑의 묘약을 마신 것이지요.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정신을 잃은 두 사람 앞엔 죽음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격정적인 사랑은 결코 식을 줄 모릅니다.
이렇듯 정열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은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전주곡에는 사랑과 운명의 모티브들이 엮어내는 두 남녀의 격정과 번뇌가 사무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전주곡은 단지 음악극의 도입 역할에 그치지 않고 음악극 전체의 핵심을 모두 담아낸 결정체라 할 만합니다.
‘전주곡’이라 불리는 관현악곡 중에는 오페라나 극적인 작품과는 상관이 없는 작품도 종종 있습니다.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이나 리스트의 [전주곡]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됩니다. 두 작품 모두 문학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하는 자유로운 관현악곡입니다. 그러므로 실상 이 두 작품은 진정한 전주곡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이 작품들은 문학적인 내용을 암시하는 자유로운 관현악곡이니만큼 일종의 ‘교향시’로 보는 것이 더 옳을 것 같군요.

말라르메의 시를 바탕으로 한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은 목신의 나른하고 관능적인 오후를 더할 나위 없이 잘 표현한 음악입니다. 드뷔시는 이 곡에서 온음음계로 조성을 약화시켜 모호한 느낌을 창출했고, 독특한 관현악법으로 오케스트라의 색채를 풍부하게 했습니다. 마치 공중을 떠다니듯 가볍고 몽롱한 음향은 말라르메의 시가 뿜어내는 관능적인 나른함을 쏙 빼닮았습니다. 말라르메의 시에 의하면 머리와 몸은 사람이고 허리부터 아래까지 짐승처럼 생긴 목신은 더운 여름날 오후 수풀이 우거진 시실리 해변의 그늘에서 잠을 자다가 눈을 뜹니다. 멍하니 회상에 잠긴 그는 사랑의 여신 비너스를 포옹하는 환상에 잠기지만 다시 피로에 지쳐 한낮의 뜨거운 타야 아래 깊은 잠에 빠집니다. 나른한 플루트 솔로로 시작되는 드뷔시의 음악을 들으면 여름날 목신의 관능적인 환상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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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말라르메를 [목신의 오후]에 등장하는 목신으로 풍자한 삽화
<출처: wikipedia>
시대에 따라 다양한 음악으로 변모해간 ‘전주곡’의 역사를 살펴보는 일은 흥미롭습니다. 독주자의 손가락을 풀기 위한 짧은 음악이 어느 때엔 낭만적인 성격 소품이 되기도 하고 또 어느 때엔 오페라의 도입 역할을 하기도 하거나 시적인 관현악곡으로 변모하기도 했으니, ‘전주곡’은 수많은 작곡가들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쳐놓은 멋진 음악임에 틀림없는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