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소디 - 오케스트라 교실 > 전해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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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소디 - 오케스트라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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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47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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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랩소디](1954)란 영화가 TV로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미녀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여주인공으로 나온 이 영화에서 그녀는 사랑하는 두 남자 사이에서 번민합니다. 바이올리니스트와 피아니스트, 두 사람 중 과연 누구를 택해야 할까? 두 사람 모두 그녀를 사랑하지만, 바이올리니스트에겐 사랑보다 음악이 우선이고 피아니스트는 음악보다 사랑에 더 매달립니다. 결국 여주인공은 그녀를 더 필요로 하는 피아니스트를 선택하게 됩니다.

 

 
영화 [랩소디]에서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두 남자 주인공의 이미지를 대변하며 로맨틱한 분위기를 고조시킵니다. 두 곡 모두 감성적인 성격의 음악이기에 주인공들의 연애감정을 살려주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음악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음악은 사라사테의 [치고이네르바이젠]이 아닐까 싶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로 분한 배우 비토리오 가스만이 식당에서 즉흥적으로 바이올린을 집어 들고 사라사테의 [치고이네르바이젠]을 현란하게 연주하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전문 바이올리니스트가 보아도 손색이 없는 그의 바이올린 연주 폼과 열정적인 연기는 감탄스럽습니다. 이 영화를 위해 가스만은 프로 바이올리니스트로 보이기 위해 바이올린 레슨을 받으며 대단한 노력을 했다는 후문도 있더군요.
재미있게도 영화 [랩소디]를 장식하는 주요 음악작품들은 ‘랩소디’란 이름이 붙은 음악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랩소디’라는 음악의 주요 특징이라 할 만한 환상적이고 자유분방한 느낌이 충분히 표현되고 있는데, 이는 [치고이네르바이젠] 덕분인 듯합니다. 사실 ‘치고이네르바이젠’이란 제목은 ‘집시의 노래’라는 뜻을 담고 있지만 그 음악적 성격으로 볼 때 이 곡은 일종의 ‘랩소디’라 할 수 있습니다. 랩소디란 바로 이렇게 격한 감정의 기복을 드러낸 열정적인 음악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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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소디’는 변화무쌍하고 자유분방한 음악적 상상력을 통해 격한 감정을 드러낸다. <출처: NGD>
격한 감정의 기복을 드러내는 열정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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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시곡’으로 번역되기도 하는 ‘랩소디’(Rhapsody)가 음악작품의 한 장르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초반입니다. 본래 고대 그리스에서 서사시를 노래하면서 여러 나라를 유랑한 음유시인의 작품을 뜻하는 ‘랩소디’는 체코의 작곡가 토마셰크에 의해 기악곡에 도입되었습니다. ‘토마셰크’(1774~1850)라는 이름은 음악애호가들에게도 다소 낯설긴 하지만 그는 당대 최고의 즉흥연주자 중 한 사람이었으며 ‘랩소디’의 역사에선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는 체코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 그가 작곡한 피아노곡들은 슈베르트와 슈만, 드보르작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중 15개의 ‘랩소디’는 랩소디라는 음악을 최초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습니다. 토마셰크 이후 그의 제자들이 랩소디를 작곡하면서 음악작품에 종종 ‘랩소디’란 말이 등장하게 되었고, 리스트와 드보르자크, 도흐나니, 버르토크, 에네스코 등이 ‘랩소디’라는 음악장르에 기여하게 됩니다.

사실 ‘랩소디’는 어떤 성격의 음악이라고 정의해야할지 매우 모호합니다. 음악에서 랩소디는 어떤 정해진 형식이 없으며 꼭 어떤 악기로 연주해야 한다든가 하는 원칙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본래 ‘랩소디’란 말이 고대 그리스 서사시와 관련이 있는 만큼 음악에서의 랩소디에도 역시 서사적이고 영웅적이며 민족적인 성격이 드러나고, 19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절제되지 않은 감정을 표출하는 자유분방한 음악으로 발전해갔습니다. 본래 그리스의 ‘랩소디’가 즉흥적인 구전문학이었으니 음악으로서의 랩소디 역시 아카데믹한 규칙보다는 영감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음악작품을 가리키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사라사테의 [치고이네르바이젠]처럼 헝가리나 집시 바이올린 음악의 분방한 전개 방식이야말로 랩소디의 전형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민족 음악 특성의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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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랩소디 작곡가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를 들어보면 랩소디 특유의 열정적 기질을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헝가리 태생으로 어릴 때부터 헝가리의 민요와 집시의 바이올린 연주에 친숙했던 리스트는 젊은 시절에 15곡의 헝가리안 랩소디를 작곡한 데 이어 말년에 다시 4곡의 헝가리 랩소디를 작곡해 그의 내면에 잠자고 있던 집시의 혼을 일깨웠습니다. 아마도 리스트의 전 작품들 가운데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 제2번]은 자유로운 형식과 열정적인 표현이 넘치는 랩소디의 개성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작품은 본래 피아노곡이지만 관현악 편곡으로 연주되거나 때때로 피아노와 관현악이 협연하는 협주곡 스타일로 연주되기도 합니다.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 2번]은 전형적인 헝가리 음악의 구성에 따라 느리고 장중한 ‘라수’(Lassu)와 빠르고 역동적인 ‘프리스’(Friss)의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느리고 애수 띤 음악으로부터 점차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집시 음악의 전형적인 구성입니다. 도입부에서부터 이국적이고 독특한 느낌의 음악으로 시작해서 처음부터 청중에게 강한 인상을 주고, 깊은 우울함으로부터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이르기까지 감정의 폭이 넓어서 음악이 끝날 때까지 듣는 이들을 몰입하게 합니다.

분위기를 급격히 반전시키는 랩소디 특유의 특징은 드보르자크와 도흐나니, 버르토크, 에네스코의 랩소디에도 나타납니다. 그 중에서도 에네스코의 랩소디는 인기가 많습니다. 2곡의 루마니안 랩소디 작품11을 작곡한 에네스코는 고국인 루마니아의 민속적인 음악 어법을 독특한 방식으로 그의 작품에 도입한 음악가로 매우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했습니다. 에네스코는 루마니아 민속 음악에 독일 음악의 형식을 입히고, 여기에 프랑스 음악을 색깔을 칠할 수 있었던 흔치 않은 음악가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제자 바이올리니스트 메뉴인도 그를 가리켜 “극히 특별한 인종의 혼합체”라 말할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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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소디는 스페인, 헝가리, 루마니아 등의 민속무곡의 열정적 느낌을 차용하기도 한다. <출처: Outesticide at en. Wikipedia>
에네스코의 루마니아 랩소디에서도 다문화적 음악어법이 녹아든 그 특유의 분방함을 느낄 수 있어 흥미롭습니다. 루마니아의 민속성과 집시 계통의 음악이 세련된 서유럽의 작곡기법으로 드러난 그의 [랩소디 제1번]을 들으면 루마니아 민속무곡의 생생하고 열광적인 율동미와 더불어 탄탄한 형식미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 에네스코의 [루마니아 랩소디] 외에도 드보르자크의 3곡의 [슬라브 랩소디]와 라벨의 [스페인 랩소디], 랄로의 [노르웨이 랩소디] 등 국가가 민족의 이름이 붙은 랩소디가 대부분입니다. ‘랩소디’라는 음악이 대개 민족적인 요소를 담고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예외도 있습니다. 독일의 진지한 작곡가 브람스가 남긴 [알토 독창과 남성합창, 오케스트라를 위한 랩소디 작품53]은 그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문학적 표현, 풍부한 색채, 열광적인 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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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문호 괴테의 시 ‘겨울 하르츠 여행’을 가사로 하는 브람스의 [알토 랩소디]는 민족적인 요소보다는 문학적 요소가 강조되어 있고 감정표현이 다소 다듬어져 있습니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깊은 감명을 받은 괴테가 하르츠를 여행하면서 지은 이 시에는 인간의 고통과 체념, 그리고 신을 향한 간구가 녹아있는데, 작곡가 브람스는 이 시에 담긴 슬픔과 체념의 정서를 그윽하고 풍부한 알토의 음색과 남성합창으로 표현해냈습니다.
이 랩소디를 작곡할 당시 브람스는 클라라 슈만의 딸 율리아를 짝사랑하다 그녀의 약혼 소식에 홀로 상처받았다고 합니다. 그 마음이 녹아있는 듯, 브람스의 랩소디엔 은근한 슬픔과 체념의 감정이 음악으로 승화되어 있어 더욱 큰 감동을 줍니다.
거쉰의 [랩소디 인 블루]는 재즈 풍의 음악이란 점에서 색다른 랩소디라 할 수 있습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거쉰은 클래식 음악에 재즈적인 요소와 경음악적인 형식을 도입한 미국적인 음악으로 인기를 모았습니다. 그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랩소디 인 블루]는 폴 화이트만 오케스트라와 작곡자의 독주로 초연된 이후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아직까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거쉰의 대표작입니다. 디즈니 만화영화 [판타지아 2000]에도 나왔던 작품이라 어린이들에게도 친숙한 음악일 것 같군요. 무엇보다 곡의 도입부의 클라리넷이 마치 사이렌소리처럼 음을 끌어올리며 연주하는 부분은 정말 인상적입니다. 변화무쌍한 피아노의 표현력, 재즈 풍의 연주방식을 도입한 관악기의 색채 등, 무한한 매력을 지닌 이 작품은 랩소디의 자유분방한 매력을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해낸 작품이라 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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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쉰의 대표작 [랩소디 인 블루]는 미국적 기운을 랩소디의 자유분방한 형식 속에 담아냈다. 사진은 뉴욕의 야경. <출처: ngd>
19세기 초 토마셰크에 의해 음악에 도입된 [랩소디]는 비록 그 역사도 짧고 작품 수도 많은 편은 아니지만 연주효과가 뛰어납니다. 그래서 랩소디는 오케스트라의 야외 음악회나 팝스 콘서트처럼 가벼운 음악회에서 특히 사랑 받고 있지요. 때때로 진지한 음악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나 음악을 그저 즐기고 싶을 때 랩소디를 들어보세요. 음악에 담긴 격렬한 감정 변화에 몸을 맡기다 보면 어느새 랩소디의 열광적인 분위기에 휩싸여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