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철학자 - 존 로크 > 전해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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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철학자 - 존 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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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13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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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처럼 날카로운 킬 패스로 한 번에 적진을 무너뜨리는 축구는 짜릿하다. 거기에는 미처 예측할 수 없는 창의적인 움직임이 있다. 그런가 하면 중원의 볼 점유율을 높여 경기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축구 스타일도 있다. 무엇이라고 딱 짚어내기는 어렵지만 소리 없이 강한 축구 팀도 있다.
철학을 축구에 비유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경험주의는 창의성이 돋보이는 철학은 아니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생각에 토대를 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에 바탕을 둔다. 주장하는 방식도 그렇다. 상식을 뒤집는 날카로운 논리보다는 평범한 상식에 의존한다. 적어도 근대 경험론의 틀을 세운 존 로크의 철학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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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주의는 “우리의 모든 지식은 경험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경험에서 지식이 나온다”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주장이다. 지식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경험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겠는가? 그러나 로크 철학을 위와 같이 뼈대만 간추리면 로크 철학이 강한 이유를 제대로 해독할 수 없다.
로크가 주장한 철학 자체를 위대한 철학이라고 평가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로크를 위대한 철학자로 평가하는 이는 많다. 그가 세운 철학은 위대하지 않은데, 바로 그 철학을 이야기한 사람은 위대하다? 위대한 철학자의 위대하지 않은 철학, 이 형용모순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가 위대한 철학자라는 평가가 오류인가? 아닐 것이다.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는 그를 항상 “지혜로운 로크”(le sage Locke)라고 칭했다. 미국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미국 건국의 아버지 제퍼슨은 로크를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세 명의 인물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그에 대한 찬사는 이 정도로 가볍게 넘어가자. 어떤 사상가에게도 추종자는 있는 법이니까.
나는 로크가 위대하다는 것을 그가 후대에 끼친 영향력이 그 어떤 철학자보다 크고 깊다는 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는 서양 철학의 흐름을 양분한 합리주의적 전통과 경험주의적 전통 중에서 후자의 틀을 세운 인물이다. 우리가 경험주의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우리가 경험주의 전통, 더 확장해서 근대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저히 그를 비켜날 수는 없다. 또한 로크는 정치적 자유주의의 기본 틀을 제시한 인물이다. 새삼 이야기할 필요도 없이 자유주의적 전통은 근대가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그가 살았던 영국을 뛰어넘어 세계의 정치 질서를 관통하는 큰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한 사람의 철학이 이렇게 광범위하게 영향을 준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러셀이 [서양 철학사]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이 마르크스는 어떤 점에서 로크가 세운 전통의 후계자라고도 볼 수 있다. 로크 철학의 영향력은 다른 분야에서도 찾을 수 있다. 지금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에 대한 주장은 우리가 <철학의 숲>에서 본 바와 같이 중세 철학에서 이미 그 단초가 보이지만, 마지막 펀치를 날린 결정적 인물은 로크다. 우리가 오늘날 사상과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게 된 데에는 로크의 공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이 점만으로도 로크는 충분히 위대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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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철학자로 평가 받았던 로크였지만 그가 주장한 철학 자체를 위대하다고 평가 받지는 못했다.
<출처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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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위대한 철학자 로크의 철학도 위대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로크 철학을 좀 자세하게 들여다보자. 경험주의 아버지로서 로크의 철학은 [인간 오성론]으로도 번역된 [인간의 지적 능력에 관한 시론(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에 나타나 있다. 정치적 자유주의의 효시로서 로크의 철학은 [통치론]이라고도 번역된 [정부에 관한 두 논고(Two Treatise of Government)]에 잘 드러나 있다. 정치와 종교의 분리, 또는 종교의 관용을 역설한 그의 주장은 [관용에 대한 편지]에 담겨 있다. 이 세 권의 책은 보통 로크의 3대 저작으로 꼽는다.
[인간의 지적 능력에 관한 시론]은 로크가 가장 공을 들인 책이다. 영국의 명예혁명이 성공한 후 2년 뒤인 1690년 초판이 나왔지만, 실제로 이 책은 20년 동안 꾸준히 씌어진 4부로 된 두툼한 책이다. 초판이 나온 뒤에도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으니까 30년 이상 로크의 성찰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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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가 저술한 [인간의 지적 능력에 관한 시론], [정부에 관한 두 논고]. <출처 : Wikipedia>

이 책은 여러 가지 면에서 데카르트가 쓴 [방법서설]과 대조된다. [방법서설]이 근대 합리론의 출발점이 된다면, [인간의 지적 능력에 관한 시론]은 근대 경험론의 신호탄에 해당한다. 간결한 [방법서설]에 비해 [인간의 지적 능력에 관한 시론]은 좀 산만하다. 명석 판명한 사고를 중시하는 데카르트의 깨끗한 생각을 읽는 것이 [방법서설]의 관전 포인트라면, [인간의 지적 능력에 관한 시론]에서는 구석구석을 빠뜨리지 않고 짚어본 로크의 성찰의 깊이를 읽어야 한다. 여기에서 로크가 말하고자 하는 골자는 아주 간단하게 정리된다. 인간의 모든 지식은 경험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이 평범한 주장을 로크는 그가 철학의 길로 들어선 이후 죽기 직전까지 쓰고 또 쓰고, 그리고 또 고쳐 썼다. 다른 저작에서도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점이지만 로크는 여기서 주어진 주제에 대해서 체계적인 설명을 시도하지 않는다. 창의적인 이론을 세우지도 않고, 그렇다고 자신의 설명을 명쾌하게 하기 위해서 새로운 용어를 만들지도 않는다.
로크를 이야기할 때마다 거의 빠짐없이 거론되는 ‘타불라 라사2049587376_rGhCO3nt_txt_number1.gif’(tabula rasa)라는 유명한 용어는 사실은 로크가 쓴 말이 아니다. 그는 단지 인간의 마음은 빈 방이나 아무런 문자가 없는 백지, 또는 완전히 밀폐된 암실과 같은 것이라고 비유적으로 설명했을 따름이다. 타불라 라사는 사실 라이프니츠가 로크 철학을 비판하기 위해서 사용한 라틴어 말이다. 라이프니츠의 이 용어가 비록 로크 철학을 비판하기 위해서 사용된 말이기는 하지만, 정곡을 찌른 표현이라고 후세 사람들이 자주 인용을 하다 보니 마치 로크의 말처럼 오해하게 된 것이다. 로크는 새로운 말을 즐겨 만드는 사람이 결코 아니다.
따지고 보면 로크 철학의 인식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후에 버클리가 비판한 1차성질과 2차성질에 대한 용어도 그렇다. 로크는 1차성질/2차성질이라는 말을 만들지 않았다. 다만 갈릴레이가 사용한 이 분류에 자신의 성찰을 보탰을 뿐이다. 로크는 일상적인 말로, 더 콕 짚어서 말하면 마치 클럽에서 그의 대화 상대자인 지식인 계층을 상대로 이야기를 나누듯이, 아주 길게 서술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영국인이 강조하는 상식(common sense)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 상식은 결코 극단적이지 않다. 논의를 계속하다 논리가 위험한 수위까지 가면, 논리를 포기하고 상식으로 되돌아간다. 그 점에서 대다수의 철학사가들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로크의 철학은 매우 영국적이다. 한편에서는 [인간의 지적 능력에 관한 시론]이 철학의 역사에서 영원히 기록될 걸작 중의 걸작으로 이 책을 평가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용어는 모호하고 주장은 산만하기가 그지 없는 지루한 책으로 평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여러분은 어떤 스타일의 철학을 좋아하는가? 그 리트머스 시험지로 [방법서설]과 [인간의 지적 능력에 관한 시론]을 동시에 펼치고 데카르트와 로크를 직접 만나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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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몇 가지 관전 포인트를 짚어보자면, 로크는 데카르트의 합리주의 철학 전반에 대해 총체적 반박을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로크 스타일이 아니다. 그가 데카르트에 반대하는 것은 본유 관념에 대한 대목에서다. 데카르트가 이야기하는 본유 관념은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대목에서 나온다. 데카르트가 철학의 제1원리라고 부른 ‘생각하는 나’(res cogitans)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내 안에 있는 세 종류의 관념을 분석한다. 내 마음의 바깥에 있는 사물에서 온 외래 관념, 내 마음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생겨난 인위 관념, 그리고 오로지 ‘생각하는 나’에서 비롯된 본유 관념 등이 그것이다. 데카르트는 이러한 본유 관념으로 생각하는 나, 수학의 원리, 도덕의 원리, 그리고 신의 관념 등을 꼽았다. 이 대목에서 로크는 이의를 제기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철학으로서의 경험론이 출발한다. 로크는 인간은 그러한 본유 관념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우리 마음은 그냥 텅 비어 있다고 했다. 텅 빈 하얀 백지에는 본유 관념이 없다. 단지 그것을 채워 나가는 것은 인간의 경험이다. 로크는 말한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서 열에 아홉은 그들이 착하거나 사악하거나, 또는 능력이 있거나 없거나, 그것은 교육으로부터 채워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데카르트는 이성을 올바로 인도하는 ‘정신 지도의 규칙’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로크는 하얀 백지에 기록된 ‘관념들의 연상 규칙’에 관심을 가졌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지식은 모두 외적 감각과 내적 반성이라는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무리 복잡해 보이는 지식도 사실은 단순 관념에서 비롯된 복합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데카르트가 실체라고 부른 것도 따지고 보면, 내적 성찰에서 나온 복합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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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계약을 다룬 [정부에 관한 두 논고]는 [인간의 지적 능력에 대한 시론]보다는 짧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로크 철학의 스타일은 여전하다. 이 책의 중심 주제는 과연 누가 정치권력을 보유해야 옳은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로크는 이 책에서 정치권력 또는 통치권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그는 첫 번째 논고와 두 번째 논고를 통해서 정치 권력이 왕이나 정치공동체인 정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 권력을 ‘위탁’(entrust)한 시민에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두 번째 논고에서 로크는 홉스(Thomas Hobbes)가 제기한 사회계약론을 비판하고 있다.
자연상태2049587376_kuNDyaVf_txt_number2.gif는 원래 홉스가 한 말이다. 홉스가 상정한 “만인을 위한 만인의 투쟁”인 자연상태를 로크는 다르게 해석한다. 로크에 따르면, 태초에 모든 인간은 평등했다. 자신의 행동은 자신이 각자 자유롭게 결정했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의 자유를 속박할지도 모르는 정치공동체를 결성한 것은 자연상태가 단지 불편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자연상태에서는 모두 자신이 옳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이를 중재하거나 판단할 수 있는 판관이 없어 모두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워진 것이 인간에게 권리를 위탁 받아 세워진 정부다. 그러나 위탁은 ‘양도(alienation)’와 다르다. 위탁은 미리 정해진 계약 조건을 이행하는 경우에 한해서 조건적으로 권한을 위임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상태에서 주어진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을 정부에 준 것은 아니다. 이 권리는 결코 양도할 수 없는 것이며,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은 생명, 자유, 그리고 재산에 대한 권리다.
양도할 수 없는 권리 – 바로 이 대목에서 홉스와 로크의 사회계약이 결정적으로 갈라진다. 홉스는 사회계약을 통해 모든 권리를 정부에 양도했다고 주장하지만, 로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결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로 자유를 주장하는 대목에서 로크는 정치적 자유주의의 틀을 세운 자유주의의 아버지가 된다. 또 양도할 수 없는 권리로 재산(property)을 포함시킨 대목에서 로크는 사적 소유의 이론적 틀을 세운 정치경제학의 이론을 제공한다. 로크가 제공한 정부론은 1688년 명예혁명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영국이 명예로운 혁명이라고 부르는 이 혁명 이후 영국은 더 이상 헌정 질서의 중단이 없었기 때문에 로크가 제공한 정부론은 지금도 기능하고 있는 셈이다. 또 그의 정치철학은 영국이라는 지역적 공간을 뛰어넘어 미국독립혁명과 프랑스 혁명, 그리고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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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의 정치철학은 영국을 넘어 미국독립혁명에도 영향을 미쳤다. <출처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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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가 살았던 시대는 영국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시기였다. 왕당파와 의회파의 정치 갈등, 그리고 영국국교(성공회)와 가톨릭의 종교 갈등이 겹치면서 크고 작은 파열음을 내고 있었다. 그는 이 혼돈의 시대의 한복판에 살면서 냉철한 시각으로 명예혁명을 이끌어낸 정치철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지혜롭고 냉철했다. 그의 철학에는 진보성과 보수성이 놀라운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는 경험론의 씨를 뿌렸지만, 그 이후의 경험론 철학자처럼 논리를 끝까지 밀고 가지는 않았다. 그는 사회계약을 통해 인간이 정부에 권리를 양도한다는 점에 동의했지만 동시에 정부에 양도할 수 없는 권리가 있다는 점도 함께 짚었다. 그는 영국 국교인 성공회를 믿는 독실한 신자였지만, 종교의 자유를 주장했다.
로크는 위대한 철학자이지만, 그가 주장한 철학도 역시 위대한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려야 할 때다. 우리는 위대하다는 말에 대한 기준으로 한편으로는 로크 철학의 영향력을 이야기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로크 철학의 논리적 체계의 완성도에 의문부호를 달았다. 그러나 로크는 철학적 체계의 논리적 정합성을 희생하고 영국적 ‘상식’을 우선했다. 그것이 바로 로크 철학의 힘이라는 점을 우리는 확인한다. 이제 질문을 이렇게 바꾼다. 현재 이 시대에서 로크 철학의 무엇이 살아 있고, 무엇이 죽었는가? 이것은 로크를 어떻게 재해석할 것인가를 묻는 철학적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는 물음이기도 하다.

  1. 타불라 라사(tabula rasa)
    “아무 것도 씌어지지 않은 서판”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로크의 경험주의 인식론을 상징하는 용어로 정착되었다. 로크 이전에도 마음을 백지로 비유하는 표현은 고대 그리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과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도 등장한다. 라틴어 표현 tabula rasa는 라이프니츠가 로크 인식론을 비판하기 위해 쓴 글에도 나온다.
  2. 자연상태
    자연상태라는 용어는 그 이전에도 사용되었으나 홉스에 의해 특별한 의미로 사용되면서 정치철학적 용어로 굳어진 말이다. 홉스는 자연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인 전쟁상태로 기술한다. 그는 사회계약을 통해 자연상태에서 벗어나 시민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로크는 자연상태를 자연법이 지배하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상태이지만 시비가 일어날 때 공정한 중재나 판단이 없어서 불편이 있는 상태로 해석했고, 루소는 자연상태를 자연적으로 선한 본성을 지닌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의 상태로서 불평등이 없는 상태로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