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전쟁, 그 이후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후 그리스는 잠시 동안 번영의 시기를 맞았다. 특히 아테네는 전쟁 당시 육성한 선단으로 에게해와 흑해에서의 상권을 장악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고, 이를 토대로 델로스 동맹을 결성, 동맹국들의 재정과 외교를 좌지우지 하면서 에게해(海) 일대에 제국(帝國)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체제를 강요하는 아테네의 압박에 시달리는 도시국가들은 스파르타에게 구원을 청하였고 결국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그 유명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한다. 수십 년간 그리스인들끼리의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고 이전 전쟁에서 패하였던 페르시아는 이 싸움을 부추기면서 그리스 세력의 약화를 노렸다. 비록 스파르타 세력이 승리를 거두기는 하였지만 그리스 전체를 파탄으로 몰아넣은 폐허위의 승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스파르타의 지배도 오래가지 않았으며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종결된 지 불과 15년만에 ‘코린토스’ 전쟁에서 아테네 세력에게 패하고 30년후에는 테베에게 패함으로써 스파르타의 헤게모니도 종언을 고하였다. 페르시아를 꺾어버린 그리스인들은 결국 예전에도 그랬듯이 서로간의 싸움으로 날새면서 스스로 힘을 빼앗고 있었다.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강력한 군사개혁을 시행하다
마케도니아는 같은 헬라인 계통이면서도 본토 그리스인들에게 변방 촌동네 취급을 받던 북방이었지만 서서히 변화를 꾀하고 있었다. 주민들 대부분이 미신을 믿는 등 전반적인 문화수준이 뒤떨어져 있었으나 필리포스 2세가 볼모겸 해서 테베에 유학을 다녀온 뒤로 마케도니아의 개혁이 시작되었다. 철학, 문학, 건축 등에 있어 본토 그리스의 것을 대대적으로 도입하여 문화적인 혁신을 꾀하는 동시에 군사적인 개혁을 단행하였다. BC 371년 소위 ‘보이에티아 전쟁’ 중 테베가 그리스의 패권을 쥐고 있는 스파르타에 도전하였을 때 지금 그리스 중부에 있는 룩트라에서 맞붙게 되었다. 테베의 지휘관인 에파미논다스는 군대진형의 오른쪽에 강한 병사들을 배치하는 그리스 전통의 좌약우강(左弱右强) 진형을 무시하고 테베군의 좌익에 오른쪽 보다 몇 배의 병력을 투입하여 두껍게 포진하였다. 테베군과 스파르타군이 충돌하였을 때 강군이라고 소문난 스파르타군의 강한 우익이 예상을 깨고 ‘약한’ 테베군의 좌익에 격파되는 일이 일어났다. 스파르타군의 사기는 급격히 떨어졌고 스파르타군은 그 지휘관을 잃고 수많은 사상자를 낸 체 도주하였다.
필리포스가 테베에 머물고 있을 때가 마침 보이에티아 전쟁이 벌어지던 시기였고 필리포스는 테베군의 운용과 지휘를 세심히 눈 여겨 보았다. 이후 마케도니아로 돌아가 왕이 된 필리포스는 군사적인 면에서 그리스적인 요소를 많이 도입하였지만 그대로 베끼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응용’을 이루어냈다. 예를 들어 본토 그리스의 전통적인 전투대형인 팔랑크스의 기본얼개는 유지하되 동료를 가려주는 큰 방패는 폐기하고 이를 작은 방패로 대체하였다. 호메로스의 시절부터 그리스의 팔랑크스는 투구에 흉갑, 각반을 착용하고 큰 방패와 길이 2m정도의 창인 ‘도리’를 든 남자들이 빽빽이 모여 사각형의 진을 형성한 형태였다. 그러다가 전투가 벌어지면 방패를 들어 왼쪽에 있는 동료를 적의 공격으로부터 가려주었다. 적들이 달려와서 싸우면 방패로 적의 접근을 막고 창을 위로 들어 아래로 찔렀고 적이 가만히 서있으면 적군에 서서히 다가가다가 100-200m정도(갑옷과 방패의 무게가 상당하여 그 이상을 달리게 되면 체력이 떨어져 싸울 수 없었다.)되는 거리에서 괴성을 지르며 일제히 달려들어 적들에게 부딪혔다.
전통적인 그리스 팔랑크스를 ‘아르고스’형이라고 하는데 필리포스는 아르고스 팔랑크스에서 쓰는 2m길이의 ‘도리’를 4-6m길이의 장창인 ‘사리사’로 대체하였다. 도리는 한 사람이 쓰는 개인무기였지만 사리사는 3-4인이 같이 붙잡고 쓰는 공동의 무기였다. 사리사를 든 마케도니아 팔랑크스는 적에게 일정한 속도로 다가가다가 거리가 가까워지면 앞의 서너 열(列)이 창을 내리고 창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힘껏 앞으로 내질렀다. 그러나 모두 내지르는 것이 아니라 각 오(伍)가 하나씩 건너뛰어 하나씩 공격을 하는 방식이었다. 현대식으로 설명하자면 짝수 줄들이 사리사를 내질러 공격하고 당기면 홀수의 줄들이 내지르고 당기고 다시 짝수 줄의 병사들이 사리사를 내지른다. 즉 하나씩 걸러 번갈아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에 병사들이 지치기 전까지는 계속 공격을 하게 된다. 창을 든 병사들은 무기를 휘두르거나 기교를 부릴 필요없이 앞의 적들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 내지르기만 하면된다. 앞의 서너명이 큰 창을 잡아야하는 전술 개념에서 전통적인 팔랑크스의 큰 방패는 거치적 거리기만 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16x16, 즉 256명을 기본단위로 하는 마케도니아식 팔랑크스인 ‘스파이라’가 탄생한 것이다(물론 전술적인 필요에 따라 쪼개어 운용되기도 한다). 전쟁사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팔랑크스’는 전통적인 그리스의 ‘아르고스형(Argive)’ 팔랑크스가 아니라 대개는 이 스파이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