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마스터피스(masterpiece)를 누가 만들었을까요?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임금이 세종 빼고 또 누가 있겠습니까? 세종은 문자나 천문, 농사, 음악 등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모두 재창조해 총정리 한,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보기 힘든 위대한 임금입니다. 조선 전기까지(엄밀히 말하면 세조 10년 이전까지) 종묘제례악도 중국 음악을 가져다 썼습니다. 세종은 이 음악을 완전히 한국식으로 바꾸어 오늘날까지 잇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럼 세종은 왜 새로운 음악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세종은 유교의 예악사상에 충실하고 싶었습니다. 세종이 보기에 중국의 제례악은 진즉부터 위엄을 잃었습니다. 왜냐하면 음란한 속악과 섞여 정통성을 상당부분 상실했다고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세종 때의 명신이었던 정인지는 음악에 대해 “음악은 성인의 성정(性情)을 기르며 신과 사람을 화(和)하게 하며, 하늘과 땅을 자연스럽게 하며, 음양을 조화시키는 방법이어야 한다”라고 갈파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정통 유교적인 시각에서 볼 때 중국의 제례악은 품위를 잃은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중국 것은 전승이 끊어져 절멸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종은 진정한 음악을 재창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 이유는 세종의 효심입니다. 당시 종묘에 울려 퍼지던 음악은 고려조로부터 전승된 음악으로 그 근원이 중국이라고 했습니다. 세종은 이게 못마땅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조상들이 살아 있을 때는 조선 음악을 듣다가 죽어서 제사를 받을 때에는 중국 음악을 들으니 그게 도리이겠냐는 것이지요. 평소 이런 생각을 품고 있던 그는 고려로부터 전래된 청산별곡이나 서경별곡 같은 고려 가요 선율을 이용해 새로운 음악을 창작하는데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현 종묘제례악의 모태가 된 보태평(保太平) 11곡과 정대업(定大業) 15곡입니다(현재는 각각 11곡씩임). 종묘제례에서는 이 두 모음곡이 연주됩니다. 이 음악에 대한 전문적인 설명은 아주 번잡하니 피하기로 하고 다만 보태평은 조상들의 문덕을 기리는 음악이고 정대업은 조상들의 무공을 찬양하는 음악이라는 정도만 밝히겠습니다. 조상들이 문무에 모두 뛰어나다는 것을 보이려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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