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악기 - 곡선을 그리는 음악 > 전해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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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악기 - 곡선을 그리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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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91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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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1~4호선을 타면 환승역마다 나오는 음악이 있지요? 이 음악은 보통 퓨전 국악이라고 불리는데 여기서 사용되는 주선율의 악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해금이라는 악기로 국악 악기 중 현재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악기랍니다. 국악이 서양 음악과 섞이기 전까지 해금은 국악기 전체에서 그다지 중요한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다. 거문고나 가야금 같은 주요 현악기나 대금이나 피리 같은 관악기에 밀려 별로 조명을 받지 못했던 것이죠. 그러면 왜 이 악기가 요즘에 인기를 끌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다른 국악기와는 달리 이 악기가 서양 음악의 음계를 자유롭게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답니다. 이렇게 악기도 시대에 따라 부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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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은 다른 국악기와는 달리 서양음악의 음계를 자유롭게 낼 수 있다는 점에서 현대에 와서 많은 각광을 받고 있다.
농현과 농음이 강한 연주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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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다양한 전통 악기가 있습니다. 국악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가야금이나 대금을 모르지는 않을 겁니다. 지금 한국인들은 국악을 많이 듣지 않기 때문에 국악기에 대해 자세하게 알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악기들의 연주법을 보면 거기에 우리 문화가 고스란히 들어 있어 이번에는 그것을 살펴보려 합니다. 국악기들의 대부분은 중국 것에 기원을 두거나 중국을 통해 들어온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악기들은 중국과는 다른 발전과 변용과정을 거치면서 완전히 한국화 하여 오늘에 전해졌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인의 심성에 맞게 주법이 바뀌는가 하면 우리의 심성에 맞지 않는 악기는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런 과정을 보면 우리들의 심성이나 문화에 대해 알 수 있을 겁니다.
우리 악기가 갖고 있는 주법은 비슷한 형태를 갖고 있는 중국이나 일본의 악기와 많이 다릅니다. 우리 악기의 가장 큰 특징은 한 음 한 음을 정확하게 내기보다는 농현(현악기) 혹은 농음(관악기), 즉 음을 떠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가야금이나 거문고 같은 현악기를 상상해봅시오. 이 악기들은 악기의 몸통(울림통)과 줄이 멀리 떨어져 있는 구조를 백분 활용하여 줄을 격렬하게 흔들어 음을 자유자재로 운용하는 주법을 사용합니다. 이에 비해 서양 악기인 바이올린이나 첼로를 생각해 보십시오. 줄과 악기의 몸통이 거의 붙어 있어 현을 마구 떠는 일이 애당초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대금 같은 관악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금은 음을 떨게 하기 위해서 악기를 흔듭니다. 서양 악기 중 대금과 가장 가까운 플루트와 비교해보면 대금을 떠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지 아실 겁니다. 플루트 몸체를 떨면서 부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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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과 울림통이 많이 떨어져 있는 거문고.
이렇게 보면 전통 악기들은 떨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에서 들어온 악기 중에 역동적인 농현이나 농음을 할 수 없는 악기들은 대부분 우리 음악 현장에서 사라집니다. 그 대표적인 악기가 비파입니다. 비파류 악기는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서양에 비파와 비슷한 기타와 같은 악기가 있듯이 인류에게는 매우 보편적인 악기입니다. 이런 보편적인 악기가 한국에서는 사라집니다. 이유는 아마도 같은 현악기인 가야금이나 거문고 수준의 농현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곡선적인 미를 음악적으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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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청룡사 법당 사진. 직선이 아닌 곡선적인 미를 강조한 기둥이 돋보인다.

그럼 한국에서는 왜 농현이 이렇게 중시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확실하게 알 수 없어 다만 추측만 할 뿐입니다. 한국 음악은 3박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때문에 능청거립니다. 다른 표현으로는 흥청거린다거나 넘실거린다고 할 수 있지요. 박자를 통해 보면 한국인들은 딱딱하게 분절되는 것보다 곡선적으로 너울거리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이 분위기는 아리랑을 불러보면 금세 알 수 있습니다. 한국 예술에는 이와 같이 직선보다는 곡선에 대한 지향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농현은 바로 이런 곡선적인 미를 음악적으로 표현한 것일 겁니다. 한국 음악의 이런 특성은 조형 예술에서도 나타납니다. 지금 사진에 보이는 건물은 안성에 있는 청룡사 법당입니다. 그런데 기둥들을 보십시오. 직선으로 된 기둥이 하나도 없지요? 하나같이 능청거리듯 휜 것을 썼습니다. 한국 건축에는 이런 식의 부재를 쓴 것이 아주 많습니다.
이번에는 현대의 음악에서 비슷한 예를 찾아볼까요? 한국의 트로트는 일본의 엔카(연가, 戀歌)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창법은 매우 한국적입니다. 그것은 한국의 트로트가 꺾는 소리를 더 많이 쓰기 때문입니다. 트로트는 이 꺾는 데에 맛이 있다고 하는데 음을 이렇게 꺾는 것은 바로 음을 흔드는 전통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런 한국적인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젊은이들도 트로트를 좋아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거칠고 힘 있는 소리를 높이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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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의 특색으로는 거친 음색을 들 수 있습니다. 국악에는 아주 재미있는 현상이 있는데 그것은 고운 소리를 높이 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서양의 고전 음악에서는 일반적으로 고운 음색을 좋아하는 것에 비해 국악에서는 다소 거칠고 힘 있는 소리를 높이 평가합니다. 판소리의 음색이 대표적인 것인데 명창 보고 소리가 곱다라고 하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대신 소리가 실하다고 해야지요.
현악기 중에 가야금은 그래도 고운 소리가 납니다마는 거문고는 아주 야성적인(?) 소리를 냅니다. 거문고는 손으로 치지 않고 술대라는 작은 막대기로 내려칩니다. 그래서 현을 치는 동시에 울림통을 때리기 때문에 딱딱거리는 잡음 같은 게 납니다. 서양음악에서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첼로를 치는데 활을 가지고 몸체를 때릴 수 있겠습니까? 1960년대에 어떤 영국인이 한국에 와서 거문고 독주하는 것을 녹음한 모양입니다. 끝나고 나서 명인(신쾌동 명인)에게 딱딱거리는 소리가 안 나게 다시 연주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그렇게 연주를 끝낸 명인은 ‘연주한 것 같지 않다’라고 소회를 밝혔답니다. 영국인에게는 소음으로 들렸지만 국악에서는 그 잡음 같은 것도 음악의 일부였던 겁니다. 게다가 거문고를 연주할 때 왼손으로 괘 위에 놓인 줄을 벅벅 문질러대는데 이때에도 잡음 같은 것이 많이 납니다. 그러나 한국의 연주자들은 그런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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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대로 내려쳐서 소리를 내는 거문고(왼쪽)과 대금의 청공(오른쪽)
이런 부류의 소리 가운데 대금의 청소리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대금에는 입을 대고 부는 취구(吹口) 말고 청공이라는 아주 희한한 구멍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구멍에는 갈대의 속을 붙여놓는데 아주 저음으로 가거나 고음으로 가면 이 갈대로 만든 막이 떨리면서 쇳소리 같은 것이 납니다(이를 ‘청소리’라고 함). 대금에서는 이 소리를 잘 내야 잘 분다고 하는데 서양 음악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영락없는 소음입니다. 플루트에 어디 그런 소리가 납니까? 플루트는 어떻게 하면 고운 소리를 낼까 고심하는데 대금은 어떻게 하면 힘 있는 소리를 낼까 고심합니다.
이렇게 국악과 서양 음악은 연주법이 너무나 다릅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통해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화끈한 사람이었나를 알 수 있습니다. 현대 한국 문화를 ‘역동적이다’ 혹은 ‘다이내믹하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런 것들은 조상들로부터 면면히 흘러내려온 것일 겁니다. 이렇게 보면 이전에 한국을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푼 것은 우리의 실상을 잘 모르고 말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