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는 철저하고 완벽한 의심을 할 수 있는가? 한 가지 길은 그런 다양한 개별적 지식을 낳는 지적인 방법을 의심하는 것이다. 즉 다양한 지식을 낳는다고 여겨지는 지적인 방법들이 과연 확실한 진리를 보장하는지 검토하는 것이다. 그럼 우리의 지식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 획득되는가? 아마도 첫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감각 경험을 통한 지식의 획득이다. 나는 경험을 통해서 내 앞에 있는 노란색 지폐가 5만원권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런 감각 경험이라는 방법은 지식의 확실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우리는 착각했을 수 있다. 사실은 5천원권 지폐인데, 나의 기대와 희망이 5만원권 지폐로 착각하게 만든 것일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데카르트는 감각 경험은 확실한 지식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또 다른 논변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꿈의 가설이다. 나는 어제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으며, 그 비행기 창문 너머로 해가 뜨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꿈 속에서도 무언가를 경험하고 무언가를 본다. 즉 감각 경험은 꿈 속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감각 경험만으로는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태양이 실제로 있는 것인지, 단지 꿈 속에 있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즉 감각 경험은 우리에게 확실한 지식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꿈 속이든 꿈 밖이든 항상 성립하는 것도 있다. 가령, 2+3=5라는 것은 꿈이 아닌 세계에서도, 꿈에서도 참이다. 우리가 매트릭스 속에 갇혀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2+3=5이고, 삼각형은 세 개의 변을 가지며, 둥근 사각형은 불가능하다. 꿈에서도 이런 지식이 성립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이러한 수학적 지식들을 획득하는 데 있어, 감각 경험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지식들은 감각 경험이 아니라 순수하게 정신적인 방법을 통해서 획득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그 순수하게 정신적인 방법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납득할 만한 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성, 직관, 연역과 같은 다소 어려운 철학적 개념이 필요하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전반적인 의도를 이해하는 것만이 목표라면 굳이 그런 개념들을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순수하게 정신적인 방법을 통해 지식의 확실성이 보장되는지 여부다. 이 순간 데카르트는 다소 엉뚱한 상상을 덧붙인다. 그것은 유명한 ‘악마의 가설’이다. 전능한 악마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수학적 지식을 획득하는 방법, 즉 순수하게 정신적인 방법을 그 악마가 만들었다고 해보자. 더불어 악마는 그 순수하게 정신적인 방법을 통해서 지식을 획득할 때마다 인간이 실수를 저지르도록 장치를 해놓았다고 가정하자. 예를 들어 우리가 ‘2 더하기 3이 5’라는 것이 너무 자명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악마가 만들어 놓은 속임수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런 악마가 존재할 수 있다면, 순수하게 정신적인 능력을 통해서 획득한 지식의 확실성 역시 충분하게 의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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