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들에게 지혜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법이 없으며, 지혜에 접근하기 위해선 자신이 가진 유일한 생각함의 도구인 이성이 ‘일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성은 모든 사람이 나누어 가진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성은 자신이 지혜에 대해 생각한 것이 정말 이성의 본성인 ‘보편성’에 위배되지 않는지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깃든 이성에게 묻고 교정 받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성이 노동하는 방식으로서의 ‘대화’이다. 그러니 당연스럽게도 철학은 ‘의견’을 내놓고, 그 의견을 교정하기 위해 논쟁을 하고, 교정된 보다 나은 의견을 다시 내놓는 그런 생각함의 과정을 가지는 것이다.
이렇게 철학은 ‘의견’을 지닌 자들의 전쟁터다. 옆집 아저씨의 인생철학도, 사장님의 경영 철학도, 철학관을 운영하는 점쟁이의 신묘한 철학도 혼자 방안에 있을 땐 철학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몽상이며 “이거 맞지? 이거 맞는 얘기잖아!”라고 다짜고짜 옆 사람에게 강요될 때는 사람을 피곤케 하는 독선과 폭력이 된다. 그러나 개인들이 가진 그런 다양한 생각들이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이성의 전쟁터 위에서 생존을 시험받게 될 때 그것들은 이미 철학의 반지를 손에 넣기 위한 모험의 도상에 서 있는 것이다. 용기를 가지고 철학이라는 붉은 알약을 목구멍으로 넘긴 이는 독선과 망상이라는 정신이 앓는 병으로부터 치유되기 시작한다. 설령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논리적이며 가치 있는 생각인지 시험받다가 파멸하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저 산뜻한 치유 효과를 만들어 내는 철학이라는 절대반지에 대한 유혹을 인류는 떨쳐버리지 못하리라. |